▲<나의 소원> 이정임공부하고 싶던 어린 시절
안양시민대학
그런데 다른 문자해득교육(이하 문해교육) 기관과 달리 안양시민대학은 학교 이름에 '대학'을 붙이고 있다. 최유경 교장은 이정임 할머니 시화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인생을 육칠십씩 살아온 분들이에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기회와 용기가 선뜻 생기지 않아 그간 (배우지) 못했던 거예요. '대학'이라는 이름은 그분들 인생에 대한 존경의 표시입니다." 안양시민대학의 역사는 1991년 안양지역 청년운동단체였던 <두꺼비 한글교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 교실, 야학 형태로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처음 한글 교실을 열었다. 이후 1996년 10월, '시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첫 입학식이 열렸다. 약 100여명의 참가자와 자원교사가 모여 성인한글교실과 영어, 한자반을 운용했다. 지난 18년 동안 약 700여명의 학생들이 안양시민대학에서 문해교육과정을 마쳤다.
그 중 2012년 졸업식은 더욱 특별했다. 안양시민대학 개교이래 처음으로 '학사모'를 쓴 졸업생이 탄생했다. 경기도교육청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16명 학생들이 배출된 것이다.
"학생회, 진짜 학교를 만듭니다"안양시민대학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바로 학생회 활동이다. 학급회의를 통해 모아진 학생들의 의견은 학교 운영에 적극 반영됐다. 이를 바탕으로 춘추계 소풍과 운동회, 공동체 식사, 교외 봉사 같은 학생주체 활동이 이루어졌다.
올 가을 첫 소풍을 다녀온 영어 알파벳반 임영자씨 역시 그날의 감동을 고스란히 편지에 담았다. 눈여겨 볼 점은 학교 소풍이 전하는 설렘은 환갑 학생이나 10대 소녀나 다르지 않았다. 임씨의 손 편지는 분홍빛 편지지와 알록달록한 바탕 위에 적혀있었다.
"내 나이 59세에 내 어릴 적 다니던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전혀 상상도 못한 일들이 나를 참으로 즐겁고 기쁘게 했다. 영화도 보고 맛있는 점심식사도 먹고 그런데 이제는 소풍도 간단다. 단양이라는 곳으로. 바빴지만 열일 제쳐 놓고 따라 나섰다."최 교장은 안양시민대학의 문해교육은 단순히 글자 배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 또한 학교의 주체적인 일원으로 함께 만들고 발전시키는 역할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40분씩 이루어진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교실을 찾았다. 휴식시간이 되었는데도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수능을 앞둔 고3 교실 같았다. 대부분 글자 쓰기에 몰두하거나 옆 사람과 조용히 담소를 나눌 뿐이었다. 진지했고 열의 가득찬 표정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학교에서의 배움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나도 한글 배웠습니다. 부모님께 편지 쓰고 싶습니다"안양시민대학의 불은 저녁이 돼도 꺼지지 않았다. 야간반 때문이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약 5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대부분 낮에 일하는 탓에 밤이 돼야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이러다 보니 최유경 교장의 하루도 굉장히 길었다. 보통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해 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오후 9시 경에야 정리가 됐다. 하지만 최 교장은 사람 좋은 미소로 답했다.
"학생과 교사라는 구분이 있지만 실제로 가르치고 배우다 보면 서로에게 배우게 됩니다. 특히 삐뚤어진 글씨로 자기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글을 볼 때면 '아 내가 진짜 배우고 있구나'란 생각밖에 안 듭니다."그러면서 정아무개 할머니가 적은 글 한 편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