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사이로 난 도로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아스팔트 도로와 가끔 마주지나가는 차 몇대가 전부다.
김산슬
우리만 빼면 모두 살라피야, 혹시 알리바바 아냐?사실 변명을 해보자면 우리 셋을 뺀 나흘라 앞에 앉았던 그 아저씨를 포함한 다른 승객들은 전부 이슬람 전통 옷을 차려입고 수염을 길게 기른 살라피들이었고 사실 그들의 인상은 꽤나 험악했다.
살라피란, 이슬람의 성서인 코란과 행동지침서인 하디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삶을 사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이들은 보통 수염을 길게 기르고 전통복장을 입으며,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있을 때 장난삼아 저러한 외모의 사람들을 모두 살라피라고 부르곤 했다.
차가 출발하고선 얼마 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성이 여행의 안전을 비는 듯한 기도를 시작했다. 십여명의 살라피들이 타고 있는 우리의 버스는 절대 어떤 사고도 날 것 같지 않은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그런데 이십 분쯤 지났을까, 그들 중 앞에 있던 몇 명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갑자기 이집트 대사관에서 받았던 메일의 내용이 스쳐지나간다. '납치, 강도 사고가 가장 빈번한' 위험 지역으로 규정되어 한국 대사관에서도 여러 번 통행금지를 메일로 통보받았던 시나이 반도. 잠시 잊고 있던 불안감이 또다시 스멀스멀 밀려왔다. 앞뒤 좌우로 돌아봐도 그저 가파른 계곡과 그 사이로 난 황폐한 아스팔트 길 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 순간부터 '강도가 판을 치는 아주 위험한' 시나이 반도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뭐지, 설마 우리 알리바바라의 도적떼라도 만난 거야? 그럼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슈퍼 제트는 현대판 알리바바들의 소굴인 것이다.
바로 그때 앞쪽에 앉아 있던 지긋한 나이의 살라피 아저씨가 기사에게 무어라고 말을 했는데 얼마 후 기사는 차를 세웠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설마가 사랍 잡는 건 아니겠지? 우리는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가 가득 든 묵직한 가방을 꺼내었다. 아무도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내 심장은 정말로 긴장감에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뭐가 들었을까, 노끈? 칼? 도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거지? 그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 손을 뻗어 우리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손을 들여다 보았다. 그의 손안에 쥐어진 것은 짭조름한 소금을 입혀 볶은 해바라기 씨앗들이었다.
함두릴라. 함두릴라. 함두릴라(신에게 찬양을). 잠시나마 그들을 의심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으레 생기곤 하는 신변의 위협에 대한 긴장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오해들. 맘 속으로 나를 다시 다그친다. 엄한 사람을 강도로 몰다니. 이런 오해가 벌써 오늘만도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