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노팅힐 게이트 역에 들어서는 한 여자를 무려 다섯 대의 CCTV가 동시에 주시하고 있다.
이주빈
한 여자를 주시하는 CCTV 다섯 대사진으로 담은 실제 상황이다. 커피를 든 그녀가 노팅힐 게이트(Notting Hill Gate) 역에 들어선다. 노팅힐 게이트 역은 이용객 많기로 소문난 런던 시내(city) 지하철 역 가운데 하나다. 그는 거미줄보다 촘촘하게 펼쳐진 런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행선지를 재차 확인한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 한 둘이 아니다. 그녀가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하는 동선(動線)의 반경은 약 2미터. 불과 2미터 반경 안에서 그녀를 주시하는 시선은 무려 다섯. CCTV(폐쇄회로TV) 다섯 대가 앞뒤 좌우로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았다.
런던에 와서 제일 찝찝한 게 있다면 바로 CCTV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그 곳을 바라보면 어김없이 CCTV가 날 노려보고 있다.
집을 나서면 가로등 아래 설치된 CCTV가 나의 위아래를 훑는다. 길을 건너려 횡단보도에 서면 맞은편에서 CCTV가 시비 걸듯 째려본다. 동네 슈퍼마켓에 가면 구석구석 설치된 CCTV가 혹시 도둑질은 하지 않나 눈을 떼지 않는다. 시내를 나가려고 지하철이라도 탈라치면 사방팔방에서 CCTV의 가시 눈길이 쏟아진다. 움직이려면 무조건 CCTV의 밀착 감시를 감수해야 한다.
영국의 NGO '빅브라더워치(Big Brother Watch)'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런던에 사는 사람이 하루에 CCTV에 찍히는 횟수는 평균 약 300회. 한 사람이, 한 시간당 CCTV에 최소한 13회 찍힌다는 얘기다. 이를 분으로 환산하면 약 5분에 한 번 꼴로 CCTV에 찍히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출신 작가 조지 오웰이 1949년에 출간한 소설 <1984년>이 21세기에 현실이 되어버렸다. 소설 속에서 '빅 브라더'라 불리는 이들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과 사회를 주도면밀하게 감시한다.
21세기 현실에선 국가권력과 사유재산을 지키려는 세력, 도시의 안전을 희구하는 이들이 동시에 CCTV를 활용한다. 안전과 보호라는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있지만 CCTV의 민낯은 감시일 뿐. 사회적 힘의 기울기를 타산하면 누가 감시하고 있고, 누가 감시받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그래서 감시하는 세력을 21세기에도 소설에서처럼 여전히 '빅 브라더(big brother)'라고 부른다.
영국보안산업위원회(BSIA)는 2013년 7월 현재 영국에 약 590만대의 CCTV가 설치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사생활보호 단체는 "영국 정부가 설치한 CCTV 약 185만대, 기업이나 개인이 설치한 사설 CCTV 약 420만대 등 영국에 약 605만대의 CCTV가 설치돼 있다"며 "영국에는 최소한 약 600만 명의 스파이(spy)가 항상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600만대 미만이든 600만대 이상이든 영국에 CCTV가 많이 설치돼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언론들과 경찰 관계자들도 CCTV 설치 숫자에 대해서 약 600만대로 추정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많은 CCTV를 설치하는 까닭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서다. 이 같은 논리는 2005년 런던 폭탄테러사건 이후 CCTV 설치 확대를 주장하는 세력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CCTV 범죄 감소 효과 '있다,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