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면 쉽게 볼 수 있는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문구. 아이들이 직접 쓰면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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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앨범을 신청하라는 안내문을 받았다. 허걱, 앨범 가격 무려 6만 원이란다. 나는 그래도 신청할까 고민했으나 아내는 '상술'이 엿보인다며 끝내 앨범을 신청하지 않았다. 물론 돈 때문만이 아니다. 어린이집에서 하는 활동들이 고맙기도 하지만 '아이의 아이다움'을 저해한다는 생각도 자주 든다.
일례로 지난 어버이날에 아이가 만든 카네이션에는 '엄마 아빠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어쩌고 하는 무슨 틀에 박힌 이야기가 쓰여져 있었다. 정말 우리 아이가 쓴 내용이었다면 아마도 '아빠 똥꼬나 먹어' 내지는 '아빠 스티커 다 모으면 큰 장난감도 사줘야 해'라고 쓰지 않았을까.
문제는 아이의 아이다움에 어른들이 '윤리적인 덧칠'을 해대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기에 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떤 기억의 저장으로 담아오는 많은 추억들도 천편일률적이다. 그저 수많은 아이들 속의 내 아이, 남들에게 처지지 않게 성장하는 내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성장 앨범을 경제논리에 따라 고가의 비용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내 어릴 적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어디에 살았는지, 그 시절 내 친구는 누구였는지, 나는 어릴 때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했는지…. 사실 지금도 나는 유년기에 어떤 성격을 가진 아이였는지 가끔 궁금하다. 하지만 그런 자료는 없다. 빛바랜 사진 몇 장에 기댄, 그저 풍문 속에 전달되는 내 영유아기의 사건들. 그것조차 어른들의 가치관으로 채색된, '넌 어릴 때부터 착했지, 점잖았지, 공부를 잘했어…' 그들의 욕망에 기댄 평가들.
내 아이만의 앨범을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