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민주당 의원은 국회 안팎에서 'EMS 박사'로 통한다. 사진은 11일 오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기술조사 결과 보고대회.
남소연
"장관은 EMS 잘 모를 테니 전정희 의원에게 배우세요!"전정희(52) 민주당 의원은 국회 안팎에서 'EMS 박사'로 통한다. 정부와 한국전력거래소를 상대로 EMS(전력계통운영시스템) 문제를 1년 넘게 제기하다보니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다.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 위원장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전 의원에게 배우라고 호통쳤을 정도였다.
"전력계통 관련 교수들, 마피아처럼 카르텔 형성"지난 11일 오전 그 오랜 '투쟁'의 결과물인 'EMS기술조사보고서'를 발표하는 전 의원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기술조사위원회를 꾸려 3개월 넘게 현장 실사를 벌였지만 정부쪽 위원들의 강한 견제로 결론이 둘로 갈린 어정쩡한 개선책만 내놨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전력계통 마피아 세력 막강... 산업부도 한통속" )
"일말의 기대도 걱정도 있었지만 걱정했던 대로 결과가 나왔어요. 정부쪽과 국회쪽으로 갈려 전쟁 상태이다 보니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직 한계가 있네요."공교롭게 이날 국회 산자위에선 EMS와 함께 밀양 송전선 보고서도 도마에 올랐다. 주민쪽 보이콧으로 한국전력 쪽 전문가들만 단독으로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 문제로 논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이날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전 의원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신고리 3, 4호기를 위해 밀양 송전선이 필요하다는 건 '팩트'예요. 하지만 고리에서 생산된 전력을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는 데 밀양 765kV 고압 송전선이 필요했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죠. 송전선 설비 계획 자료를 전력거래소 EMS에서 가져와야 하는데 지금처럼 EMS가 제 역할을 못하면 신뢰를 얻기 어려운거죠." 지난 1년 EMS 문제를 조사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이른바 '전력(전기) 마피아'였다. 산업부와 전력거래소를 중심으로 학계와 산업계가 똘똘 뭉쳐, '원전 마피아' 못지않은 폐쇄적인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EMS와 밀양 송전선 문제에서 국회나 주민 편에 선 김영창 아주대 교수(에너지학)나 김건중 충남대 교수(전기공학)는 예외적인 인물이다.
"밀양 송전선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교수 자문을 구하려고 해도 거의 모두 산업부나 전력거래소 용역을 해서 그 그늘을 벗어나기 어려워요. 계속 용역을 맡아야 하니 그쪽과 척지는 일을 못하고 끼리끼리 카르텔을 형성하는 거죠. 마피아처럼. 김영창 교수는 전력거래소에 있을 때 EMS 문제를 주장하다 쫓겨났고 김건중 교수도 K-EMS(한국형 EMS) 연구하다 문제를 느껴 탈퇴했어요. 이렇게 극소수 교수만 제대로 얘기하고 나머지는 그쪽 입맛에 맞추는 거죠."
전 의원의 '내공'은 이 분야를 30~40년 전공한 교수들도 쩔쩔매게 만들 정도다. 정작 전 의원은 정치학과 교수 출신 정치 신인으로, 지난해 4월 총선 뒤 지식경제위원회(현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맡기 전까지 전기의 '전'자도 몰랐다.
"당시 전력 분야에 워낙 문외한이어서 입법조사처에 설명을 부탁했는데, 마침 유재국 입법조사관이 9·15 정전 사태가 EMS을 사용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어요. 저도 그 내용에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지난 2011년 9월 15일 전국적으로 돌아가며 전력 공급이 끊기는 '순환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갑작스런 무더위에 발전기 고장까지 겹쳐 발생한 '인재'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유재국 조사관은 지난해 6월 전력거래소가 EMS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제 2003년 미국 동북부 '블랙아웃' 역시 EMS 상태추정 기능 고장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산업부는 9·15 사태 이후 정확한 원인은 찾지 않고 전력거래소 말만 믿고 예비력을 확보하는 데만 주력했어요. 그러다보니 국민에겐 절전만 강요하고 한전도 과다한 예비력을 확보하느라 적자가 늘어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하게 된 거죠. EMS를 돌렸더라면 이런 악순환은 없었을 거예요."EMS는 전국 송전·발전 상태를 실시간 감시해 연료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사고 발생시 부하를 조절해 대규모 정전사고(블랙아웃)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전력거래소는 지난 2002년 220억 원을 들여 EMS를 도입했지만 2003년 민영화(전력산업구조개편)를 염두에 두고 도입한 시장정산시스템(MOS)과 합치면서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게 이번 기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전 의원은 EMS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아 낭비한 연료비만 매년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 규모가 8000만kW인데 지금까지 별 탈 없었던 게 놀라울 정도예요. 그동안 거래소 급전원들의 경험이나 감으로 잘 버텨온 거죠. EMS는 사람으로 치면 뇌에 해당하는 전력 운영 핵심 기능이어서 제대로 작동하면 급전원들 어려움도 줄여줄 수 있어요. 사람 감에만 의존하다보면 순간 실수로 9·15 같은 정전 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