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 살, 얽히고설킨 알록달록한 지하철 노선도가 어찌나 무서웠던지.
네이버 지하철 노선도
스물한 살 겨울, 혼자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에 대학 논술시험을 보러 왔을 때가 생각난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알록달록한 지하철 노선도가 어찌나 무섭던지. '지하철은 무섭다(부산에 살 때는 거의 지하철을 안탔다)'며 버스를 타고서는, 불안한 마음에 기사 아저씨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걱정스러운 아빠의 목소리.
"진아, 정신 단디(똑바로) 차리라." 서울에서의 생활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할 때면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때 마다 "정신 단디 차리라"는 아빠의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토록 '서울 아니면 안 된다'며 재수까지 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찌됐건 부산 토박이였던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고 이제 신혼집까지 구하게 됐다.
"집이 네모반듯하지가 않아", "테이프로 문틈 막아놓은 거 봐"지난주 망원역 근처에서 집을 볼 때는 신축빌라를 몇 군데 볼 수 있었다. 집이 좀 작기는 해도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곰씨는 6호선 보다는 2호선 라인에 있는 집을 얻고 싶어 했다. 곰씨네 직장은 7호선 학동역 인근.
만약 6호선에 집을 얻는다면 2번을 갈아타고 출퇴근을 해야 한다. 선배들은 "지하철 한 번 더 갈아타면 더 싸고 좋은 집을 얻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나를 배려해서 우리 회사 근처로 집을 얻기로 한 곰씨에게 또 한 번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곰씨는 "홍대입구역이나 합정역 근처에도 이런 비슷한 곳이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이날은 연남동, 동교동 쪽에서 집을 다섯 군데 정도 돌아봤다. 기대했던 '깔끔한 빌라'는 없었다. '웬만하면 마음에 든다'는 곰씨와 달리, 나는 어째 보는 집마다 그다지 마음에 차지 않았다.
"곰팡이 슨 거 봤어? 집이 습한가봐." "집이 네모반듯하지가 않아.""주인집 아줌마 바로 밑에 사니까 간섭 많이 할 것 같아." "테이프로 문틈 막아놓은 거 봐. 외풍이 심하다는 거잖아."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집을 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이렇게 깐깐하게 집을 고를 줄은 몰랐다. 서울생활을 시작한 이후 10여 년간 나는 이사만 무려 8번을 했다. 하숙집, 고시원, 투룸, 반지하, 원룸...그동안 다달이 낸 월세가 아마 수천만 원은 될 거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집을 신중하게 골랐던 적은 거의 없다.
'어차피 얼마 안 살 집인데 뭐.''이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집이 거기서 거기지.'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없다면, 집에 나를 맞추자'는 마음이었달까. 하지만 1억이 넘는 돈이 들어가는 전세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것도 신혼집이라면 더욱더.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곳, '집다운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여기에는 일종의 '보상심리'도 있었다. 이날 몇 군데의 집을 보면서 느꼈던 '결점'들은 대부분 이전에 살던 집에서 한 번씩 겪었던 고충들이다. 벽에 곰팡이 슬고 외풍 심하고 동네 시끄럽고 주인집에서 사사건건 간섭하고. '완벽한 집'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깐깐하게 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다.
"신혼부부는 많은데, 요즘은 2억짜리 전세도 잘 없어요. 주인들이 다들 월세로 받으려고 하거든요. 적어도 1억 4000만 원 정도는 주셔야 신축빌라를 얻을 수 있어요. 예전 같으면, 오래 기다리면 좋은 집이 나올 거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말을 못하겠어요. 매물이 없으니까." 이렇게 이기적인 나, 56년 더 견뎌줄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