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껏 한 자 한 자 글씨를 쓰시는 할머니의 손
강은경
"우리 마을이 복 받은겨. 이렇게 좋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와서 사니…."
길에서 마주친 어르신들이 대놓고 나를 칭찬했다. 볼 때마다 밭에서 상추, 아욱, 파, 미나리 등 푸성귀들을 뽑아 내게 안겨줬다. 옆집 조갑내 할머니는 지금 막 캤다며 감자 한 바구니를 들고 왔다. "우리 선상님 감자 좋아하시나…"라며. 그럴 때마다 나는 고맙고, 한편 낯 뜨거웠다. 내 안에 숨어있는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내가 이 마을 한글교사 강사로 참여한 이유마을 한글교실에 강사로 참여한 지 4개월쯤 됐다. 이미 한글교실이 그 몇 달 전에 시작됐다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지리산 자락으로 귀촌한 후 2년 동안, 나는 마을 돌아가는 형편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먼발치서 멀뚱멀뚱 했다. 마을회의나 행사에도 발길을 두지 않았다. 관광버스 타고 다 같이 삼천포로 봄나들이 갈 때도 끼지 않았다.
복작복작 모여 매일 점심을 같이 해 먹는 농한기에는 마을회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땀을 빼며 둘러앉아 노닥거리는 한겨울의 마을 찜질방에도…. 당산제나 정월대보름 행사 정도 구경삼아 나가 봤을 뿐이다. 나는 그저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가볍게 교제하고 왕래하는 게 편했다.
그런데 어느날 김순애 할머니가 길 가던 나를 불렀다. 마을 초입께 혼자 살고 있는 집으로 나를 들이셨다. 연세가 여든다섯인 김 할머니는 억척같이 바지런하고 유별나게 꽃을 좋아하는 분이다. 금잔디, 우담동자, 채송화, 과꽃…. 그 집 화단에서 꽃씨를 많이도 받아왔다.
"아이구, 다리야! 아이구…. 끙끙…. 안 아픈 데가 읎어. 이러다가 저러다가 곧 죽으려나…. 시방, 즘심 먹었어?" "예, 먹었어요." 안 먹었다고 하면, 아픈 다리를 끌고 또 상 차린다고 할까봐 거짓말을 했다. 불러들여 점심을 먹인 적이 몇 번 있었기에.
"
그럼, 글 쪼깨 갈켜 주고 가." "할머니, 한글 배우세요?" "긍께, 마을회관에서 한글교실 혀. 할매들은 많고 선생은 하나닌께 영…. 죽기 전에 꼭 글자를 배우고자픈디…."그래서 김 할머니랑 나란히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았다.
"나-비- 이? 으짜서 자꾸 엄한 디로 연필이 간댜? 모-자- 어, 또 틀린 겨? 지랄 났군, 지랄 났어. 무슨 글자라구? 긍께 아는 것도 까먹는 판인디, 대갈통이 늙어서…. 이거는 뭐여?" 한 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빈 뱃속이 요동을 치는데도 나는 차마 일어서지 못 했다. 할머니는 지치지도 않고, 떨리는 손으로 한 칸 한 칸 공책을 채워 나갔다.
"으이구, 으짠댜? 내가 너무 붙잡구있구먼. 근디, 요 거는 워처케 쓰는 겨? … 요 거는 뭐여?…." 마치 한을 풀려는 듯 늦은 배움에 열심인 할머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