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곰씨가 살 집은 어디에? 사진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의 한 장면.
스튜디오 느림보
'힘든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집 구하기'가 시작된 것이다. '결혼 선배'들은 10월이 결혼식이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집을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곰씨와 나, 둘 다 월세를 내고 자취를 하고 있으니 집을 빨리 구해서 함께 사는 게 경제적이겠다 싶었다.
먼저 위치를 정해야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사회팀을 떠나 국제뉴스를 담당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기사를 쓰고, 상암동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한다. 현재 살고 있는 서교동에서 회사까지는 버스를 타면 20분 정도 걸린다.
곰씨네 회사는 학동에 있다. 2호선을 타고 가다가 7호선으로 또 갈아타야 한다. 출장을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동으로 출근한다.
곰씨는 내근을 해야 하는 나를 배려해서 마포구 쪽에서 집을 얻자고 했다. 서교동·연남동·합정동·망원동을 후보로 정했다.
햇살이 좋은 토요일, 곰씨와 나는 우리 집 앞 부동산에서 만났다. 지금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다. 집을 나서기 전, 나는 살짝 긴장했다. 한강 근처에 있는 부동산에서 '1억짜리 전세 없냐'고 말했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는 S선배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건 우리는 S선배보다 예산이 2000만 원 더 많다는 것 정도?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 '은행 돈'이라는 거다.
학자금 끝나니 이제 전세자금... 아, '대출 인생' <오마이뉴스>에 입사한지 올해로 4년 차, 부끄럽게도 나는 그동안 돈을 거의 모으지 못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은 꼬박꼬박 월세·생활비 등으로 나갔고, 삼시 세끼를 다 밖에서 사 먹다 보니 무엇보다 앵겔지수가 높았다. 경제관념까지 없어서 월급을 규모 있게 쓰지도 못했다. 재테크 같은 건 영 머리가 아팠다. 나와 달리 곰씨는 숫자에 밝은 편이기는 했지만, 입사한 지 아직 1년이 안 돼 모은 돈이 얼마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20년 넘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줬으면 됐지 그 이상의 도움을 받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곰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결혼식·예단·예물 모두 간소하게 하기로 했지만 문제는 집이었다. 보통 남자는 집을, 여자는 혼수를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혼은 독립된 인격체의 결합인데, 왜 남자 쪽에서 더 큰 부담을 져야하는 건지,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부모님이 집 해준다는 친구들 보면 마음 한편으로 부럽고, 친구들이 '집은 당연히 남자가 해와야 하는 것 아냐?'라고 말하면 나도 모르게 솔깃할 때가 있다. 아, 이 얄궂은 이중성이여!)
다행히 곰씨가 저금리로 대출이 돼서 전세자금의 대부분은 대출을 받기로 했다. 학자금 대출 인생이 끝나니 이제 전세자금 대출 인생이다. 학자금은 천만 원이었지만, 이번에는 스케일이 비교도 안 된다.
"1990년대에 지어진 집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