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 피크와 룽다숙소 창문을 통해 본 세상
신한범
저녁, 가이드와 포터들은 소풍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틸리초 호수를 다녀오기 위해서는 음식과 차를 준비해야 합니다. 소풍 준비는 로지 주인이 아닌 가이드와 포터에 의해 진행됩니다. 내일 먹을 짜파티(빵)를 굽고 감자와 계란 삶으며 즐거워합니다. 그들도 내일은 틸리초 호수를 즐기기 위한 여행자입니다. 소풍은 모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3730m의 고도 때문인지 지난 밤 모두 불면의 밤 보냈다고 합니다. 저도 잠이 오지 않아 몇 시간을 단순한 숫자 계산으로 보냈습니다. 불빛 사라진 침낭 속에서 혼자 문제를 내고 풀어갑니다. 암산으로 하는 계산은 매번 결과가 달랐습니다. 두 자리 수 곱셈은 왜 이리 어려운지요.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 헤드랜턴을 켜고 전경린의 <엄마의 집>을 읽습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어 저마다 자기가 생긴대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구. 그게 인생인걸. 범죄가 아닌 이상 누구도 그걸 억압해서는 안 돼."'틸리초 호수'가는 길다음날 아침, 포터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습니다.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면도를 하고 머리를 손질하며 멋을 냅니다. 20대 초반이면 한참 멋을 낼 나이겠지요. 비록 생계를 위해 이곳에 왔지만 오늘은 즐거운 소풍날입니다. 작은 배낭에 지난 밤에 준비한 밀크티와 짜파티 그리고 삶은 계란을 넣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행 모두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쯤 틸리초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야 틸리초 호수에 올랐다가 캉사르로 돌아올 수 있는데 가이드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가이드가 "하루면 다녀 올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틸리초베이스캠프까지 하루가 소요되며 더구나 지금은 비수기라 로지가 닫혀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욕심 때문에 산행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숙소에 가서 침낭과 로지 열쇠를 가져 오기 위해 걸음이 빠른 포터들을 마을로 보냈습니다. 2시간을 더 오르자 상상을 초월하는 급경사와 산사태 지역이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아 발을 옮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