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청,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기습 철거중구청 직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시민과 예술가들이 만든 솟대, 화분, 분향소 집기류를 강제철거한 뒤 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
이날 서울 중구청은 오전 6시경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1년 가까이 농성을 벌여온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기습철거했다.
유성호
분향소가 박살났다. 천막 안에서 자던 해고노동자들은 일 년 동안 지켜온 곳에서 신발도 못 신고 끌려나왔다. 새벽에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서울 중구청 직원들에 의해 분향소의 영정들은 또 다시 머물 곳을 잃었다. 중구청은 천막을 치운 자리에 화단을 쌓고 꽃을 심었다. 해고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또 다시 길에 주저앉았다. 중구청이 조성한 화단은 이제 추모동산이 됐다. 공권력에 의해 또 한 번 짓밟힌 이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지난 4일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이후 세상을 떠난 해고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철거됐다. 철거를 직접 시행한 중구청과 항의하는 해고노동자들과 시민 40여 명을 연행한 남대문경찰서에 비판이 쏟아졌다. 중구청은 '법 절차에 따른 집행'이라고 했지만 영장 없이 철거했다는 의혹과 화단설치를 놓고 불법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재청 또한 덕수궁 담벼락 보호와 보수공사를 이유로 중구청에 분향소 철거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철거의 원인제공자'로 지목 당했다.
비판의 화살은 박원순 서울 시장을 향하기도 했다. 보수 언론에서는 애초에 분향소 설치를 옹호했고 철거 책임을 중구청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는 정반대 관점으로 철거 직후 SNS에서는 박 시장이 분향소를 지키지 못한 것을 질책하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분향소는 서울시청 길 건너 바로 지척에 있었다. 또 박 시장은 분향소가 철거 위기에 있을 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그를 든든한 '아군'으로 여겼고, 이번에도 그런 기대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박 시장은 반성문을 쓰게 된다. 분향소 철거 다음 날인 지난 5일, 박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저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데, 어제 오늘 내내 제 마음은 다시 겨울로 되돌아간 듯했다"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겨울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22명이라는 소중한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더 이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그들의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구청이 설치한 화단도 언급했다. 박 시장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 그곳에 꽃이 피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야 하지 않을까, 상념이 깊은 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분향소 철거와 관련해 시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고, 철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자연스럽게 박 시장의 글은 철거를 막을 권한이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것으로 읽혔다. 또 분향소를 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한 중구청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고 여겨졌다.
그렇게 박 시장을 향한 분노는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 해고노동자들도 여전히 덕수궁 앞 그 자리를 지키는 시민들도 중구청과 남대문경찰서, 문화재청 등을 비판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분향소 설치에 박 시장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괜한 시비를 건다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시장은 최선을 다 했지만 권한이 없지 않았냐는 것이다. 지난겨울 노숙자의 죽음에 반성문을 썼던 것처럼 항상 약자의 편에 서려 하는 박 시장의 진정성이 통했다고 볼 수 있다. 기자 또한 당시 박 시장 말에 공감하고 수긍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철거 사전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 하지만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