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정원. 저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벨기에 스카우트들이 머물렀다.
홍성식
벨기에 걸스카우트 6인방, 요즘 앤트워프는 어때요?'여행이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다름 아니다'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만약 내가 다시 길고 먼 여행을 떠난다면 그건 새로운 땅과 바다에서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위와 같은 즐거운 일기를 쓰던 그해 8월. 머물던 숙소 '써니레이크 호스텔'에서 벨기에 앤트워프에 산다는 발랄한 여고 졸업반 소녀 6명을 만났다. 다음 달(유럽 학제는 9월이 입학 시기인 모양이었다)이면 대학생이 될. 스카우트 대원인 그 아이들은 대학에 다니는 선배 둘의 인솔 아래 이른바 '어드벤처 캠핑'(모험 여행)을 온 것이다. 호스텔 정원에 텐트를 치고 거기서 나흘을 묵었다.
친절하고, 싹싹하며 나이답게 순수한 그 소녀들과의 더듬거리는 영어 대화가 즐거웠다. 벨기에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쓰는 나라. 그럼에도 다들 영어를 곧잘 했다. 나만이 아니라, 여행 중이던 대학 1학년 열여덟 네덜란드 소년 루벤 역시 신이 난 눈치다. 왜 안 그렇겠나. 당신의 열여덟을 떠올려보면 이해되고도 남을 일.
형이 한국 유학생과 친한 탓에 소녀시대와 카라의 뮤직비디오를 봤다는 루벤에게 슬쩍 물었다.
"'걸스 제네레이션(소녀시대)'이랑 쟤들 중에 누가 더 예뻐?"어색하게 웃으며 우물쭈물 말끝을 흐린다. 재밌다. 나도 마찬가지. 재잘대는 그녀들의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사라진 '청춘'이 복원되는 듯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 벨기에 소녀들 중 매우 뚱뚱한 친구가 있었는데 스스로도 전혀 기죽어 보이지 않았고, 누구도 그 아이를 따돌리는 기색이 없다는 거였다. '왕따'와 '자살'이란 단어가 신문 사회면 기사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한국 상황이 동시에 떠올랐다. 너나들이로 어울리고, 너나없이 평등하게 마음을 나누는 듯한 그네들을 보며 벨기에 교육의 어떤 면이 '왕따'를 막아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벨기에 소녀들은 낮에는 인근 산에 오르고, 산재한 유적을 찾아다니거나 배를 빌려 섬으로 소풍을 가는 등 '호연지기'(?)를 기르다가 해가 질 때면 돌아와 정원에서 콜라나 우유 따위를 먹으며, 주방에서 서툰 솜씨로 요리를 했다. 누구랄 것도 없었다. 모두가 귀여웠다. 있지도 않은 내 딸들 같았다.
밤이 깊어지면 선배 언니들이 취침을 권했지만, 멀리 여행 온 10대의 마음은 다 마찬가지. 잠이 올 리가 없다. 그럴 때면 마케도니아의 록음악 연주자 나자르가 선배들 몰래 백포도주 1잔씩을 소녀들에게 따라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나이라면 그런 사소한 일탈도 즐거울 것 아닌가. 이윽고 시간이 자정을 넘겨 사위가 고요해지면 나자르가 조용한 곡을 골라 기타를 연주했다. 또래다운 꿈꾸는 눈동자로 그 곡을 허밍 하던 벨기에 소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