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왕의 꿈>.
KBS
김춘추가 유능하고 탁월한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KBS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통일에 대한 김춘추의 열망이 수없이 강조되고 있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그를 통일 영웅으로 묘사하는 관점이 적지 않은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결코 통일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춘추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한민족의 영역을 축소시켰다는 이유로 그를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나 보다'라고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민족의 영역을 축소시켰든 안 시켰든 간에 그는 통일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통일은 두 개 이상을 하나로 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일정한 범위 안에 A와 B 두 개가 있다면, A와 B를 하나로 합하는 것이 통일이다. 단순히 A와 B 중에서 하나가 없어지는 것은 통일이 아니다. 이런 이치를 염두에 두고, 김춘추 시대의 역사를 검토해보자.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한 서기 660년에 의자왕은 나당연합군에 백기를 들었다. 이로써 백제왕조는 공식적으로 '폐업'을 신고했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 김춘추가 백제를 통일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이 땅의 대부분은 백제부흥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부흥군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일부 지역은 당나라 행정구역인 도독부의 관할로 들어갔다.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키기는 했지만, 백제 땅을 신라에 합하지는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그는 이듬해인 66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살아생전에 신라가 백제 땅을 지배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
따라서 김춘추가 한 일은 백제를 멸망시킨 것뿐이다. 통일이란 것은 단순히 상대방을 멸망시키는 게 아니라, 평화적으로든 무력적으로든 상대방과 나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김춘추는 신라와 백제를 하나로 만들지 못했다.
문무왕이 즉위한 뒤 백제부흥군이 진압됐지만, 그렇다고 백제 땅이 신라의 지배를 받게 된 것도 아니다. 부흥군의 소멸과 함께 백제 땅을 차지한 것은 신라가 아니라 당나라였다.
김춘추가 죽은 지 7년 뒤인 668년에 신라는 당나라와 다시 한 번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고구려 땅의 대부분은 당나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런 상태에서 신라는 백제 땅을 차지하기 위해 670년부터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김춘추가 죽은 지 9년 뒤부터, 백제 땅을 통일하기 위한 신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신라는 김춘추가 죽은 뒤, 비로소 통일 전쟁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