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가까운 이 거리에는 금강산, 감미옥, 강서회관, 한강, 뉴욕곰탕 등 20여개의 한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2010년 말 국회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된 새해 예산안에 정부가 뉴욕에 고급 한식당을 설립하기 위한 예산 50억 원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경준
공교롭게도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입니다. 김재원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예산집행 종료일을 이틀 앞둔 2011년 12월 29일 총액 40억 원에 연구 용역 28건을 무더기 발주하고, 다음 날인 12월 30일엔 한식재단 홈페이지(www.hansik.org)를 개편하는 계약을 9억6000만 원에 체결했습니다.
당시 김재원 의원 측은 "사업 무산 후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돈 쓸 곳을 찾아내 연말에 한꺼번에 해결한 것"이라며 "예산을 반납하지 않기 위해 해가 넘어가기 전 급하게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농식품부측은 "50억 원의 예산은 꼭 한식당 설립이 아니더라도 한식세계화를 위해 쓰도록 추가 배정받은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홈페이지 개편의 경우 기존에 서버 용량에 한계가 많아 고화질 동영상 등 홍보 자료를 올리지 못했고, 접속자가 많으면 수시로 다운이 됐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10억 원을 들여 서버를 2대에서 5대로 늘리는 등의 작업을 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한식재단 홈페이지 하루 방문자 수는 당시 2600명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3000명도 채 안 되는 방문자에게 한식을 홍보를 하기 위해 10억 원을 써놓고, 예산 남용이 아니라는 정부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농식품부가 뉴욕 한식당 설립비 50억 원을 불용처리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 년도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산을 쓰지 않고 불용처리 하면 다음 해에 관련 예산이 삭감되기 때문에 편법을 동원한 것이죠. 지방자치단체가 연말에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집어엎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실제 농식품부는 2012년도 한식세계화 사업 추진비로 219억 원을 다시 배정받았습니다. 앞서 2009년도 89억 원, 2010년 195억 원, 2011년 269억 등 지난 4년간 한식세계화 사업에 들어간 예산이 총 769억 원에 이릅니다.
그러나 '영부인의 간판사업'으로 시작된 한식세계화 사업은 시작만 거창했을 뿐 인프라 구축처럼 장기 대책이 아닌 홍보나 이벤트성 사업에만 집중하면서 무리수가 이어졌고, 실패한 사업으로 전락했습니다.
김재원 의원은 "한식세계화 실무를 주도한 한식재단의 2010~2011년도 사업비 중 홍보예산 비율이 48.3%나 됐다"고 지적했는데요. 비효율적인 사업 집행 탓에 이명박 정부는 4년간 769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허비했고, 결국 감사원의 감사를 자초했다는 지적입니다.
"마구잡이로 밀어붙여 예산만 따 놓고 결국..."문제는 '김윤옥 한식당'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의 한식세계화 사업의 실패가 사업 초기부터 충분히 예상됐다는 것입니다.
2010년 김윤옥씨 주도로 출범한 한식재단이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설립 계획을 세우자, 농식품부가 총대를 멨습니다. 정부가 민간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뉴욕에 고급 한식당을 개업하겠다며 50억 원의 예산 책정을 요구한 겁니다. 결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은 물론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강력하게 반대해 사실상 백지화됐습니다. 그러나 2011년 예산안이 날치기 처리될 때 슬쩍 얹혀서 50억 원의 뉴욕 한식당 예산이 함께 처리된 겁니다.
50억 원의 예산은 선정된 민간사업자가 뉴욕에 한식당을 만들면 여기에 정부의 지분을 투자하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이후 한식재단은 사업자를 물색했지만 불투명한 수익 전망 등을 이유로 응찰자가 없었습니다. 뉴욕 한식당을 위한 국내 사업설명회에는 2개 업체, 뉴욕 사업설명회에는 6개 업체만 형식적으로 참석했고, 사업공모에는 아예 아무도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식당 공간을 임대하지 않고 매입해야 하는데,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 맨해튼에서는 200억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제대로 된 사업 타당성 조사나 관계 전문가 의견수렴도 없이 졸속으로 뉴욕 한식당 설립을 추진했다는 지적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결국 뉴욕 한식당 사업은 2011년 10월 13일 최종 무산됐습니다.
당시 정범구 의원은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을 상대로 한 국회 질의에서 "처음부터 많은 위원(의원)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안 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을 갖고 있었던 사업"이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는 또 "농림부가 마구잡이로 밀어붙여서 예산만 따 놓고 결국 아무것도 안 됐다"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업을 벌여 놨다가 못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