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제3차 지하 핵실험의 성공을 축하하는 '평양군민연환대회'가 열리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1980년대 말까지 북한이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를 주장했고, 1차 북핵위기를 거쳐 북미 간 제네바합의를 통해 핵동결에 들어간 때를 생각하면 완전히 새로운 정세가 조성되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비가역적인 해체)로 요약되는 대북 핵정책, 이명박-부시/오바마의 대북 압박 공조 등 한미일 3국의 일련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불태웠고 급기야 통제불능이 우려되는 상태를 조성하였다. 중국의 소극적 중재외교도 일조하였다. 북한의 말대로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간 것인가.
북한이 핵억제력을 강화하겠다고 강변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비핵화 회담이 가능한지 아닌지, 그에 따라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강행하는 일관된 명분은 미국의 적대정책이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이 자신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인 2002년 10월 3~5일 평양에서 열린 북미회담에서 북한은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며 핵 포기를 대가로 미국에 핵공격 위협 중단, 평화협정 체결,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였다. 그런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은 핵개발을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위 요구 중 제일 중요한 것은 미국의 핵공격 위협이다. 오바마 정부 취임 1개월여를 앞둔 2009년 1월 17일 북한은 외무성은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게 된 것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나 경제지원 같은 것을 바라서가 아니라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하였다. 앞으로도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지속되고,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유지되고, 미국과 중국이 북핵 관리모드를 가동하고, 한미일 대북정책 공조가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핵억제력을 계속해서 강화할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종말, 6자회담 사멸을 선언했지만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그 책임은 당연히 북한에게 있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 등 주변국들이 모두 권력교체에 들어서는 시기에, 핵보유 능력을 기정사실화 하고 김정은 정권의 통치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핵실험 시점을 결정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북핵문제의 장기화, 북한의 핵 능력 향상에는 다른 6자회담 참여국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제네바 합의 이행, 9·19 공동성명 이행 등 북핵 동결, 폐쇄를 바탕으로 핵 폐기로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일방적, 임기응변식, 상황대응식 강압정책은 북핵을 괴물로 키운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
북한의 강력한 핵개발 의지와 안보리 제재에 대한 결연한 반대 입장 뒤에는 북한의 일관되고 분명한 생존전략이 작용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완전한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해도 자주권과 생존권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조선반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은 항시적인 긴장이 떠도는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이라고 말하였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 지속은 물론 미국과 중국의 북핵 공조까지도 염두에 두고 핵능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핵보유국 기정사실화 vs. 그랜드 비핵화 협상북한은 기본적으로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한편에는 핵개발, 다른 한편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외교적 접근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1월 14일 보도한 북한 외무성 비망록은 북한이 북미 대화를 통한 안전보장을 추구하고 있고, 그 주요 매개수단으로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보도는 "조미 쌍방이 수십년간 정전상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오고있는 현실은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지 못할 리유가 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유엔사 해체가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유지하는가 마는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평화와 안정을 원하는가 아니면 랭전의 부활을 꾀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으로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이 옳은 선택을 할 때까지 그 어떤 형태의 전쟁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강화"해 나가겠다는 뜻을 잊지 않고 있다.
이제 한반도 비핵화는 물건너 갔는가? 눈에는 눈 핵에는 핵? 한반도 전역에 핵 유령이 횡행하고 있다. 그러나 3차 핵실험 이후 사태에 직면하여 분명한 사실은 이제 모호하고 어정쩡하고 임시방편적인 접근은 일말의 유용성도 없다는 점이다. 근본적 선택에 직면해있다.
두 가지 길은 대타협과 대파국이다. 북한 핵을 강제로 빼앗는 강압적 방식은 우리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 이론상 두 가지 길이 있지만 사실은 외길 밖에 없는 이유이다. 휴전체제 60년에 즈음하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대타협의 길에 나서는 것밖에 없다. 휴전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중대결단이 그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을 병행 추진하는 포괄접근이 필요하다. 북핵 폐기 뒤 평화체제 논의를 하자는 기존 접근은 이제 시효를 다했다. 지금까지 견지해온 그런 입장이 지속된다면 (지금까지 본 것처럼) 북의 핵무장 강화를 방조할 것이고 비핵화 논의에 남한을 배제시킬 우려가 있다.
3차 북핵 실험을 통해 북한은 핵보유 능력을 과시하며 남한과 미국 등 관련국들에게 자신들이 핵개발을 통해 추구한 여러 목적을 일거에 충족시킬 외교적 해법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아니면 핵무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야 한다. 북핵의 원죄인 분단체제/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대화의 형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비핵화를 평화체제 수립의 전기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의 무거운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통제 및 검증체제를 제시하며 대타협 방안을 검토할 때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물건너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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