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후에의 왕궁.
서영진 제공
수백 km에 이르는 냐짱-후에 구간을 베트남 종단열차가 오후 내내 힘겹게 달렸다. 지친 철마가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춘 곳은 후에. 불과 7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곳.
새벽 2시. 역 주변은 물론, 도시 전체가 깊은 잠에 들어 사위가 캄캄절벽이었다. 가로등도 없고, 달빛도 졸고 있다. 왕조의 중심지였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전형적인 조용한 시골마을 분위기.
숙소부터 구해야했다. 가지고 있던 낡은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을 펼쳤다. 후에 관련 정보는 지극히 적었다. 겨우 하나 발견한 숙소 이름은 '민꽝 게스트하우스'. 그런데 책에 실린 조잡한 지도만으론 도무지 찾을 자신이 없다. 그때다. 기차에 동승했던 청년 서너 명이 내게 다가와 묻는다.
"도와줄까요?"후에에서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지금은 제각각 다른 도시로 떠나 대학에 입학하거나, 일을 한다는 20대 초반의 베트남 젊은이들. 그러니까, 고교동창 야유회 비슷한 걸 떠났다가 나와 같은 기차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숙소 찾기 고민은 해결. 함께 맥주라도 한 병씩 하라며 내가 내민 5달러 지폐를 한사코 마다한다. 이방인에게 베푼 호의를 몇 푼의 돈으로 계산 받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다.
민꽝 게스트하우스는 가족이 운영하는 작고 소박한 곳이었다. 온갖 꽃나무가 흐드러진 정원을 바라보며 발코니에서 마시는 달콤한 베트남 커피가 나쁘지 않았다. 연유를 듬뿍 넣은 베트남식 커피에선 초콜릿 향기가 났다. 평소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지만, 민꽝 게스트하우스의 드립 커피는 좋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아주머니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들은 커피는 물론, 바나나와 파인애플, 드래곤 후르츠 따위를 머무는 사흘 내내 무료로 줬다. 로비에 앉기만 하면 그것들을 내왔다.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성의가 고마웠다.
후에를 떠나는 날. 예상한 금액보다 적은 숙박료를 요구해서 한 번 더 놀랐다. "난 사흘을 묵었는데, 왜 이틀 치만 계산한 건가"라고 물으니, 영어가 서툰 아주머니를 대신해 아들이 답한다. "첫날은 새벽에 왔잖아요, 그날 건 계산에 포함 안 시켰어요."
대신 커피와 과일값을 지불하겠다는 나와 "그건 어떤 손님에게나 공짜로 주는 것이니 받을 수 없다"는 주인 모자와의 즐거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제갈공명과 맹획처럼 피 튀기는 것이 아닌 웃음 섞인 유쾌한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