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이 남아있는 따라비오름에서.
조남희
종종 연락하고 지내는 이주민 처자의 경우도 그렇다. 며칠 전에도 전화가 와서 "외롭고 힘들어서 육지로 돌아가고 싶다, 서귀포로 이사 가고 싶은데 혼자라서 무섭다"고 했다. 나는 "너무 성급하게 결론짓지 말고 조만간 만나서 얘기를 해보자, 같이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답한 뒤 수화기를 내렸다. 사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하게 되는 것은, 동병상련의 마음에 더해 전우를 하나 잃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때문이다.
제주에 와서 좌충우돌 하고 있는 낯 모르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건씩 메일을 보내 '힘들다' '외롭다' '만나서 얘기라도 하자'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나도 너처럼 내려가고 싶다'는 이야기들.
박민규 단편소설집 <카스테라> 중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는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이 담겨 있다. "인생에서 무엇을 더하고 뺄 것인가의 문제, 그걸 말하는 게 아닐까"라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소설을 읽어주면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집을 구하면서 나는 내 인생에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집을 더하고 싶었지만, 가마솥과 밖에 있는 화장실마저 더할 수는 없었기에 당분간 텃밭을 가꾸는 삶을 포기하는 산수를 했다.
그전에 내 인생에서 행한 작지 않은 산수는 제주에서의 좋은 환경과 마음의 여유를 더하기 위해 도시에서의 안정된 직장과 수입, 편리한 생활을 빼는 것이었다. 어느 것이 덧셈이고 어느 것이 뺄셈이 되는지는 지극히 내 개인의 영역이다.
그래서 제주에 살러 오겠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각자 자기 인생의 산수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나와 같은 산수를 해서 제주도에 내려오는 경우에도, 모든 것이 덧셈이 되지는 않는다. 1년 살 집 한 칸 구하는 일, 외로움 등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신구간이 지나 이사 시기를 놓치긴 했지만, 그래도 싸고 방이 넉넉한 집을 구하는 걸 포기하지는 말아야 겠다. '가마솥과 밖에 있는 화장실이라는 마이너스를, 제주가 좋아 내려온 사람들이 조금 덜 외로워질 수 있는 공간, 지역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재미있는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 큰 덧셈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텃밭은 덤이 될 터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제주에 있는 지상의 신들도 이런 이사라면 조금은 눈감아 주지 않을까. 화장실이 밖에 있고 가마솥에 목욕물을 데워야 했던 그 집은 아직 남아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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