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불만이 이혼사유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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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간의 성(性), 아름답고 즐거운 일입니다. 부부 간 갈등을 해결하는 데 이만한 묘약도 찾기 힘듭니다. 돈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이 잘 맞아야 합니다. 그게 안된다면 갈등을 조장하는, 아주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황성빈씨 부부처럼 말입니다.
부부 간의 이혼 사유 중 으뜸을 차지하는 '성격 차이'가 실은 '성적 차이'의 다른 표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성이 은밀하고 예민한 영역이다 보니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성적 불만은 당사자만의 문제로 치부되고 그래서 고통은 더욱 큽니다. 오늘은 부부 간의 성적갈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해보죠.
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부부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또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성관계로 만족하는 부부도 있고, 1년에 한 번도 하지 않고서도 잘 지내는 부부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매일 밤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부부도 있겠지요.
만일 부부가 서로 가치관과 취향이 달라서 성문제를 원만하게 풀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이 개입하는 게 맞을까요. 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법이 어떻게 개인의 성생활에 정답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어쨌거나 최대한 당사자끼리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원만한 해결이 어렵고, 성적 불만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면 문제는 달라지겠지요. 부부 간에는 동거의무가 있는데 여기에는 성적 교섭에 응할 의무가 포함된다고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성관계 거부는 이혼사유가 될 수 있을까요.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성관계 거부로 결혼생활 파탄될 정도라면 이혼사유 [사례] A씨(30대 남성) 부부는 결혼생활 7년이 넘도록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 A씨는 "아내가 계속 성관계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면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아내 B씨의 말은 달랐다. "신혼 초 남편(A씨)이 성관계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후로 잠자리를 회피했다"면서 "아이를 갖자고 해도 경제적 이유로 반대했다"고 A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결혼생활 동안 부부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부모들까지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결국 별거에 들어가게 되었다.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는 A씨와 달리, B씨는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맞섰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혼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두 사람이 더 노력해서 잘 살아보라고 권고한 셈입니다. 법원은 "두 사람은 직접적인 성교만 없었을 뿐, 별거 전까지는 비교적 다정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법원은 ▲ 성관계의 부재가 심각한 혼인파탄 사유로 작용하지 않은 점 ▲ 황씨의 아내가 전문가상담과 치료 등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점 등을 들어 파국은 피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상 이혼사유인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더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즉 부부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었고, 결혼생활을 계속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한쪽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면 성적불만도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도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쪽의 책임이 더 커서는 안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성적 불만과 이혼, 대법원의 판단기준은대법원은 성적 불만을 곧바로 이혼사유로 연결시켜서는 곤란하다는 신중론을 보였습니다. 일시적이거나 회복가능하다면 이혼은 안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부부 중에 성기능의 장애가 있거나 부부 간의 성적인 접촉이 부존재하더라도 부부가 합심하여 전문적인 치료와 조력을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은 일시적이거나 단기간에 그치는 것이므로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2010. 7. 15. 선고 대법원 2010므1140 판결 등)그러나 이 단계를 넘어서서 심각한 상황, 즉 다음 중에 한 가지에 해당한다면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① 정당한 이유없이 성교를 거부하는 경우② 성적기능의 불완전으로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한 경우③ 그 밖에 부부 상호 간의 성적욕구의 정상적인 충족을 저해하는 사실이 존재하는 경우 대법원은 이런 경우 "부부 간의 성관계는 혼인의 본질적인 요소임을 감안할 때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례를 볼 때 A씨의 아내 B씨가 ①에 해당한다는 증거가 없더라도 ② 또는 ③에 해당하는지 더 따져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법원은 원만한 성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부관계에서 아내가 성관계를 거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혼청구를 기각한 것은 위법하다며 사건을 2심(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2007년에 제기한 소송은 2012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그 기간 동안 두 사람은 이미 멀어질대로 멀어져버렸습니다. 법원은 결국 이혼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A씨에겐 "성관계 부재 등 불만을 회피함으로써 부부 사이를 악화시키고 아내와의 대화나 만남을 회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B씨의 잘못으로 ▲ 7년 동안 성관계가 없었음에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뿐만 아니라 ▲ 암투병 중인 시부모 간호에 소홀한 점 ▲ 부부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점 등을 거론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성적 불만이 컸을 뿐 아니라 서로 믿음이 사라짐으로써 완전히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또다른 사례를 소개합니다. 법원은 아내가 신혼여행부터 잠자리를 거부해서 1년 넘게 부부관계가 없었다는 이유로 남편이 제기한 소송에서 "정당한 이유없이 아내가 성관계를 거부하여 혼인파탄에 이르렀다"며 이혼판결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정반대의 판결도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잠자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제기된 이혼소송에서 법원은 "부부 사이에 성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것은 서로 대화로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어느 부부 일방에게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이혼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대화나 치료로 성적 갈등 극복 가능성 있다면 "이혼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