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내다본 이란의 풍광. 사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홍성식
어렵다... 눈동자 색깔까지 적으라고 하는 이란 비자신청서
지난해 봄.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경유해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란대사관을 찾아 여행비자를 신청한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접수해야 했는데, 적어야 하는 항목이 100개가 넘었고, 질문도 까다롭기 짝이 없었다. 내 눈동자의 색깔과 이미 사망한 내 아버지의 이름, 결혼 여부까지.
끙끙대며 항목 하나하나를 상세히 적어 서류를 전송해놓고 2주를 기다렸다. 그러나, '여행비자가 발급됐다'는 답장이 없었다. 이쯤 되니 화가 난다기보다 오기가 생겼다. 혼잣말을 했다. "이란, 반드시 가고야 만다."
풍문을 들으니 이스탄불보다는 다른 도시에서 신청하는 게 비자 받기가 쉽다고 했다. 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끊었다. 터키 동부 에르주름으로 가는 티켓이었다. 이스탄불에서 1200km가 넘는 거리. KTX처럼 빠른 기차가 터키엔 없었다. 연착을 거듭한 끝에 34시간 만에 에르주름에 도착했다. 거기서 하루를 자고 러시아와 이마를 맞대고 있는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트라브존으로 내처 달렸다. 다시 버스로 5시간.
트라브존은 이란 여행비자가 가장 신속하고, 쉽게 발급되는 도시라고 했다. 이란영사관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앞서 말한 100여 개 항목의 질문이 있는 비자신청서를 다시 써야한단다. 쓰라니 쓸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이름을 또 한 번 썼고, 내 눈동자 색깔이 '다크 브라운'이라는 걸 새삼 확인했다. 결혼은 왜 안 했느냐 물어서 "여행에서 돌아가면 할 것"이란 거짓말까지 했다. 무슬림 국가에서는 미혼의 단독여행자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서는 터키 중앙은행 트라브존 지점으로 가서 비자 비용을 송금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끝에야 비로소 '이슬라믹 리퍼블릭 오브 이란'(Islamic Republic of Iran) 글자가 선명한 비자를 얻을 수 있었다. 영사는 여행비자를 붙인 여권을 돌려주며 이란 지도까지 덤으로 줬다. 수염이 가시처럼 돋은 험상궂은 표정과는 전혀 다르게 선량하게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