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김용국
안녕하십니까. 이도남(제대로 이혼 도와주는 남자)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결혼, 그 준비 단계인 약혼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분의 사연입니다. 법은 정세아씨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학력과 직업을 속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부분 파혼을 떠올리시겠지요. 어떤 분들은 패물까지 돌려달라고 하실 겁니다. 또 위자료 청구를 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법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약혼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결혼을 예약하는 일입니다. 법적으로 그럴 듯하게 얘기하자면, '장래에 결혼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남녀 사이의 계약'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약혼은 어떻게 성립될까요. 특별한 형식이 필요 없습니다. 양가 부모님이나 친구들 앞에서 약혼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식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남녀가 "앞으로 결혼하자"는 의사만 일치하면 됩니다. 약혼은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18세부터는 부모의 동의를 얻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혼을 하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바뀌면 못하는 겁니다. 민법(803조)을 보면 "약혼은 강제이행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결혼은 당사자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문제인만큼 약혼했다고 해서 강제로 결혼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일방적으로 파혼을 하거나 결혼을 이행하지 않은 쪽에겐 손해배상 등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 법에는 일정한 이유가 있으면 파혼을 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파혼(약혼해제)사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약혼후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은 때② 약혼후 금치산 또는 한정치산의 선고를 받은 때③ 성병, 불치의 정신병 기타 불치의 악질이 있는 때④ 약혼후 타인과 약혼 또는 혼인을 한 때⑤ 약혼후 타인과 간음한 때⑥ 약혼후 1년이상 그 생사가 불명한 때⑦ 정당한 이유없이 혼인을 거절하거나 그 시기를 지연하는 때⑧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결혼에서 상대방 학력, 경력, 직장은 중요한 정보"그렇다면 약혼남이 학력과 직업 등을 속인 정세아씨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이것도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로 보아 파혼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입니다. 결혼을 앞둔 남녀에게 학력, 경력, 직장에서의 직급 등은 속여서는 안 될 중요한 정보라는 말이지요.
지난 8월 부산가정법원에서 유사한 사례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30대 남성 A씨는 학교 친구의 소개로 같은 연배의 여성 B씨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교제 넉달 뒤부터는 결혼을 약속하고 주말을 함께 보냈습니다. 결혼 날짜를 잡은 A씨는 신혼집을 장만하다가 우연히 B씨가 살던 집의 부동산등기부에 이혼을 원인으로 한 가처분이 올라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B씨는 유부녀로 남편과 이혼 소송 중이었고, 직업과 학력도 속여왔던 것입니다. A씨는 B씨에게 파혼을 통보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그러자 B씨도 A씨가 일방적으로 파혼을 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았다며 위자료를 달라는 맞소송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판결의 요지를 쉽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약혼은 혼인의 예약이므로 약혼자는 자신의 혼인여부, 학력, 경력 및 직업과 같이 결혼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사항을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알릴 의무가 있다. 그런데 B씨는 A씨에게 이같은 내용을 속였으므로 파혼은 정당하고, 파혼에 책임이 있는 B씨는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대법원도 비슷한 사례에서 약혼자에게 "학력, 경력, 직업 등을 사실대로 고지할 신의성실의 원칙상의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파혼 원인 제공자에게 위자료 청구 가능만일 두 사람이 파혼에 합의했다면 그걸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별다른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파혼을 통보하거나 파혼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여기서 손해는 재산상 손해와 함께 정신적 손해(위자료)도 해당이 됩니다. 재산상 손해로는 약혼식·결혼식 비용, 결혼 준비 비용, 그 밖에 결혼으로 감수하게 된 손해(이직이나 휴직 등)가 포함됩니다.
정신적 손해로는 파혼을 하게 됨으로써 정신적 충격, 그리고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된 사정에 따른 손해가 해당될 것입니다. 위자료는 나이, 교제기간, 파혼 과정과 경위, 책임 정도, 재산상태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참고로, 위에 소개한 사례에서 부산가정법원은 "B씨의 잘못으로 A씨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며 위자료 2천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지난 9월 서울가정법원에서도 파혼 위자료 판결이 있었는데요. 사건 내막을 보니 다소 충격적입니다. 약혼남 C씨는 약혼녀 D씨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헤어지겠다고 수시로 엄포를 놓았는데 그 요구가 가관이었습니다.
C씨는 자신과 함께 부부교환 성관계(스와핑)나 2:1(쓰리섬)을 하도록 권유하고 심지어는 D씨에게 다른 남자와 잠자리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도록 요구한 것입니다. D씨는 이별이 두려워 마지못해 몇 차례 응했는데 그런데도 C씨는 떠나고 말았습니다. 법원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약혼녀를 이용하고 파혼까지 한 C씨에게 위자료 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세아씨의 문제를 해결할 차례입니다. 우선 걱정을 접으셔도 되겠습니다. 당당하게 K에게 약혼해제, 즉 파혼통보를 할 수 있습니다. 파혼통보는 꼭 문서나 형식을 갖춰야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나 전화로도 가능합니다.
파혼 책임은 K에게 있으니 손해배상 청구도 할 수 있겠군요. 결혼식과 신혼여행 취소 위약금이나 파혼에 따른 정신적 고통에 따른 금전보상도 가능하겠습니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하지 않고 결혼 날짜까지 잡은 정씨에게도 실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 점도 어느 정도 감안이 될 것입니다.
K에게 결혼의 징표로 준 약혼예물도 있다고 했죠? 그건 어떻게 될까요. 다음 기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기사는 약혼예물과 결혼예단과 같은 혼수를 돌려받을 수 있을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세상은 넓고 이성은 많다...'조건' 대신 '사람'을 보자끝으로 정세아씨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파혼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입니다. 소송으로 가게 된다면 K와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면서 잘잘못을 가려야 합니다. 금전적인 손실이 그리 크지 않았다면 소송없이 그냥 깨끗하게 헤어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연애결혼을 했지만 많은 이들이 중매, 맞선, 소개팅과 같은 자리를 통해 이성을 만납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사람'보다 외모나 조건이 눈에 띄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학력, 수입, 직업 등과 같은 조건을 과장하거나 속이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결혼을 앞둔 분들에게 조건을 걷어내고 사람과 마주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제가 진부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젊음은 빛나고 세상은 넓으며 멋진 이성은 넘쳐납니다. 아무쪼록 좋은 경험을 했다고 여기고 새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이도남은 혼수와 예물에 관한 얘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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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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