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김두현
현대사회의 사랑 연속극 수준인 <서경별곡><쌍화점>은 장덕순이 <한국문학사>에서 '망국의 노래'로 평가한 고려가요다. 온 나라에 신하들을 파견하여 미모와 미성(美聲)을 갖춘 여인들을 뽑아오게 한 다음 노래와 춤을 가르쳐 궁중의 기생으로 삼아 밤낮으로 향연에 빠져 산 충렬왕은 이 노래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왕이 그 모양이었으니 나라 안 문화 수준이 어떠했을지는 따져보지 않고도 바로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쌍화점(몽고 빵집)에 쌍화떡을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외인부대)가 내 손목을 잡더라. 삼장사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더니 중(성직자)이 내 손목을 잡더라.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용(권력가)이 내 손목을 잡더라. 술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 주인(일반백성)이 내 손목을 잡더라.<쌍화점>의 가사는, 산문으로 바꿔 읽으면서 축약하면, 대충 위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당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성적으로 문란했다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증언해준다. 사회풍자적 요소는 강하지만 그렇다고 문학성이 뛰어난 노래는 아니다.
조선 시대가 <만전춘> 등 상당수 고려가요를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또는 음사(淫辭)라 하여 배척했지만 <쌍화점>만은 '억울하다'고 항변할 처지도 못 될 듯하다. 그 탓인가, 내용은 고려가요 <쌍화점>과 무관하지만 제목만 따와서 만들어진 2008년 영화 <쌍화점>도 결국 '음사' 수준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현대사회의 '막장' 드라마 수준인 <쌍화점>
그에 비하면 <진달래꽃>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가시리>는 격조 높은 사랑 노래가 어떤 것인가를 멋지게 보여준다. 단 한 자락의 군더더기 수사도 늘어놓지 않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의 애달픔이 곡진하게 표현되어 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나난/ 션하면 아니 올셰라셜온 님 보내옵나니/ 가시난 닷 도셔 오쇼셔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지만, 서툴러서 혹여나 님의 마음을 다치면 뒷날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보내는 마음! 떠나간 길로 금세 돌아오기를 소망하는 간절함으로 노래를 끝내는 깔끔함! 세상에 그 어떤 남자라 하더라도 이런 여인을 사랑하지 않으리. 떠나가는 남자가 '수준 이하'인 것이다.
결코 '수준 이하'일 수 없는 '민주주의'를 '님'으로 생각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1970∼80년대, 대학가에는 <가시리>가 새로 유행을 했다.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희구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 고려 시대 이후 아득한 세월이 흘렀지만 '님'을 찾는 민중의 희구는 변함이 없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라'고 말한 한용운의 갈파가 완벽하게 적중한 셈이었다.
<진달래꽃>의 원형인 고려가요 <가시리>그러나 세속적 가치관은 깔끔한 사랑보다 좀 구질구질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에 대뜸 귀가 솔깃해진다. 특히 그 사랑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불구경'일 때는 완벽하게 그러하다. <서경별곡>은 화자인 여인이 말이 많고, 제3자인 뱃사공도 개입되고, 무대도 이름 높은 대동강이라는 점에서 대중의 흥미를 끌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 노래는 고려 시대에 <청산별곡>이나 <가시리>보다 훨씬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리라 여겨진다.
서경(西京)이 아즐가 서경이 셔울히마르는/ 닷곤 데 아즐가 닷곤 데 쇼셩경 괴오마른여희므론 아즐가 여희므론 질삼뵈 버리시고/ 괴시란 데 아즐가 괴시란 데 우러곰 좃니노이다.구스리 아즐가 구스리 바회예 디신들/ 긴히단 아즐가 긴힛단 그츠리잇가즈믄 해를 아즐가 즈믄 해를 외오곰 녀신들/ 신(信)잇단 아즐가 신잇단 그츠리잇가서경이 좋은 곳이지만 님이 다른 곳으로 떠나간다면 나는 하던 일 다 버리고 따르리라. 구슬이 바위에 떨어져도 끈은 부서지지 않듯이, 천년을 홀로 지내더라도 님에 대한 내 믿음은 변하지 않으리.여인은 <가시리>와 엇비슷한 마음을 노래한다. 물론 지명 등 구체적인 어휘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가시리>에 비해 단아한 맛은 많이 모자란다. 특히 3연은 그런 냄새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제 '끝'인데 무슨 말인들 못하리. 대중의 언어는 본래가 그렇다.
대동강(大同江) 아즐가 대동강 너븐디 몰라셔/ 배 내여 아즐가 배 내여 노았는다 샤공아네 가시 아즐가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 녈 배예 아즐가 녈 배예 연즌다 샤공아대동강(大同江) 아즐가 대동강 건넌 편 고즐여/ 배 타들면 아즐가 배 타들면 것고리이다대동강에 배는 왜 띄웠느냐. 이 넓은 대동강에 배만 없으면 어찌 내 님이 건너갔으리. 사공아, 네가 지금 남의 님 배에 태워 강 건너로 실어줄 형편이냐, 집에나 가 보아라. 너 이러고 있는 동안 네 각시 바람나는 줄도 모르느냐. 내 님은 대동강을 건넜으니 거기서 다른 여자와 놀고 있겠지!
정지상 한시 <송인>, 대단한 이별 절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