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춘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자료사진)
권우성
정치하는 사람들에겐 침묵조차 함의(含意)의 언어다. 그래서 정치는 8할이 말과 글로 이뤄진다. 의회 의장의 영어 표현이 '스피커'(the Speaker)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경솔하고 빈약한 정치언어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꽂힌다.
남기춘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이 14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했던 '말'이 큰 기삿거리가 되고 있다. 남 위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 김지태씨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문제가 되고 있는 정수장학회와 관련 "후진국 같았으면 (독재자가) 자기 이름으로 하고 자기가 먹어버리면 그만이었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개인이 먹지 않고 공익재단을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는 식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강도가 금은방을 털어 공익단체 하나 만들면 아무 죄가 없다. 남 위원은 법원조차 인정한 재산 강탈이라는 범죄를 문제없다는 식으로 버무린다. 기소가 전문인 검사출신답지 않다.
남 위원은 또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방안 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총을 들이대는 자세를 취하며 "총이 있으면 옛날처럼 다시 뺏어오면 되는데"라고 했다. 이를 보도한 기자들은 '농담'이라고 감싸줬다. 군사독재가 한국 사회에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는지 최소한의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경박한 '농담'이다.
정수장학회는 널리 알려진 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 부인 육영수씨의 '수'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후보와의 연관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 나올 것 같다고 기자가 지적하자 남 위원은 "이름을 바꿔야죠, (안철수 후보를 연상시키는) '찰스 재단'이라고 하면 어떠냐?"고 말했다. 피의자에게조차 삼가야할 비아냥을 주저하지 않고 하는 것은 '정치쇄신'이 아니다.
남 위원이 이 같은 막말과 비아냥 소릴 이어가자 옆에 있던 안대희 위원장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자제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안 위원장 역시 남의 옆구리 찌를 처지는 아니다. 남 위원을 새누리당에 스카우트한 이가 바로 안대희 위원장이다. 안 위원장은 2003년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일할 때 남 위원을 중수 1과장으로 발탁했으니 누가 봐도 남 위원은 '안대희맨'이다.
지금은 '박근혜의 남자'가 된 안대희 위원장은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 가장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2003년 3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시작으로 2004년 6월 부산고검장, 2005년 4월 서울고검장, 2006년 7월 대법관 등 노무현 정권 내내 거의 일년 단위로 영전을 했다.
정치인에게 설화(舌禍)는 낙마의 지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