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운전기사 아저씨(가운데), 그리고 문호영 안내원(오른쪽)
신은미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 크리스가 오기로 돼 있단다. 식당에 도착하니 크리스가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크리스의 손을 잡고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크리스! 크리스를 북한에서 만나다니... 잘 있었어? 애들하고 애들 엄마는?""집에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처형 오신다고 전부들 난리예요. 같이 오려고 했는데, 제가 오늘 인민위원회에 볼 일이 있어서 혼자 나왔어요.""여기서 집이 멀어?""차로 한 30분 정도 거리랍니다. 모레 우리 농장에 오시기로 돼 있어요.""알고 있어. 근데, 국경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보니까, 여기 농촌이 다른 데보다 더 나아 보이던데?""아마 그럴 거예요. 여기가 중국하고 가까워 교역을 많이 하니까 아무래도 다른 데보다 생활 수준이 좀 높을 겁니다. 음식도 평양보다 더 나을지 몰라요. 한번 드셔 보세요. 처형, 저 이제 슬슬 가봐야겠어요. 여기서 안내원하고 저녁 식사 하시고 호텔로 가시면 됩니다. 모레 다시 만나요."크리스는 집에 가기 전에 한 군데 더 볼 일이 있다며 작별인사를 한 뒤 식당을 나섰다. 북한에서 친척을 만나다니, 정말로 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통일이 다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식사를 하면서 문호영 안내원은 조금 전에 못다 한 자기소개를 마저 한다. 그는 초등학교를 이곳에서 다녔으며, 동네에서 신동으로 불릴 만큼 공부를 잘했단다. 덕분에 그는 청진에 있는 중학교를 나왔고(라선에서 뽑혀서 갔다고 한다), 평양외국어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전공이 영어였는데, 군대에 가면 외국어를 쓸 일이 없어 다 잊어 버릴 것 같아 군대는 가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이 "군대에 안 가도 되느냐"고 묻자 그는 "북한 군대는 지원제(모병제)를 따른다"고 답했다.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리만룡 안내원이 '북에서는 군대가 지원제'라고 하자 남편이 강한 의구심을 표했던 일이 생각났다
(북한 군 복무제도가 지원제라는 언급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6년 전부터 지원제가 됐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지원제가 아니라 징집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편집자말).
문호영 안내원은 "대학 졸업을 하고 나서 평양에 있는 직장에 다니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세상에 제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참 꾸밈이 없고, 생활력이 강하면서도 여성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자 남편이 또 한마디 덧붙인다.
함께 한다면 '사슴'과 '승냥이'도 친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