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의 주인공인 김준(김주혁 분).
MBC
우리가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들의 상당수는 왕이나 관료다. 과거에는 왕이나 관료가 정치인과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왕 혹은 관료의 모습과 정치인의 모습을 함께 갖추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권력과 관련된 것이다. 독일 사회과학자인 막스 베버는 '정치는 권력의 세계에 참여하려고 하는, 또는 권력의 분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했고, 미국 정치학자인 한스 모겐소는 '정치는 권력보유·권력확대·권력과시 중 하나와 관련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정치의 본질이 권력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하는 왕이나 관료들도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인들의 존경을 받는 역사 속 인물들도 어느 정도는 정치적 때가 묻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극에서 주인공의 사소한 정치적 흠집을 다루지 않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정치적 혹은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정치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흠집이 사소한 것이 아니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주인공이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일지라도 그냥 묵과할 수 없는 과오를 갖고 있다면, 사극에서는 그것도 시청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주인공의 업적과 과오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중시할 것인지를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종영을 앞둔 MBC 드라마 <무신>이 최근에 보여준 '역사왜곡'은 좀 실망스러웠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무신정권 제9대 지도자인 김준의 정치적 과오를 숨기고 다른 인물한테 떠넘기는 데 급급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항의 불한당 같은 행동 탓에 쿠데타 불가피했다? 무신정권 제6대 지도자인 최우는 망나니 같은 서자인 최항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것이 불안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최우는 자기 집 노비 출신인 김준에게 '내 아들 최항을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최우는 아들에게 최고 권좌를 넘기면서도 국정운영의 실권만큼은 김준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개 버릇 남 못 준다'는 말처럼, 최항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은 뒤에도 행실을 고치지 못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술과 섹스에 정신이 팔린 사람이었다. 그냥 그렇게만 살았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최항은 술과 섹스에 심취했다가 잠시 정신을 차린 뒤에는, 틈만 나면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인물들을 그냥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폭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