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 현호를 강인한 눈물로 키워내고 있는 엄마, 박향숙(41)씨
추연만
100년 만의 폭염이 한반도를 달궜던 지난 8월 8일. 말복이 지났다고는 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이 세상을 익힐 것 같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혹독한 폭염. 휠체어를 타야 하는 뇌성마비 장애인 현호(17·고1)와 어머니(박향숙·41)가 흘릴 땀을 생각하니 문득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 원망스러워졌다.
현호의 집은 경기도 의왕시 오정동 주택가에 있는 매입임대주택(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 가족, 월평균소득의 50% 미만인 저소득층의 안정적 주거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택배일을 하는 아빠(박광철·48)의 100여만 원 남짓 수입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이지만 5천만 원의 대출까지 얻어 무리하게 입주한 것은 몸이 불편한 현호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세 아들들을 위해서였다.
"애들이 넷이나 되고 현호의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작은 집에서 사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여섯 식구가 화장실 하나를 쓰다 보면 불편한 게 하나둘이 아니거든요. 현호를 위해서라도 목욕탕이 크고 넓은 집이 필요했어요."현호를 위해 넓은 집으로 이사 온 건 좋은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다가구 주택이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현호는 3층까지 불편한 몸을 난간에 의지하며 기다시피 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 오기 전에 현호한테 물어봤어요.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어떡할까 하고요. 현호도 좁은 집이 싫었던지 가자고 하더라구요. 엄마 도움 없이 올라올 테니 이사를 가자고요. 동생들도 형을 도와주면 되니까 이사를 가자고 했고요. 그래서 이리로 왔어요."뒤늦게 얻은 아들, 그 아이는 아팠습니다현호는 결혼 4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기다리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는 뛸 듯이 기뻤다. 아이가 늦는다고 볼멘소리를 하시던 시아버지 앞에서도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었다. 더구나 쌍둥이라니 기쁨도 두 배였다. 당연히 남편도 기뻐했다. 부부는 기다리던 아이니만큼 건강하게 낳아 훌륭한 아이로 키우자고 약속했다.
비교적 순탄한 임신 기간. 쌍둥이라 그런지 때로 배가 뭉치고 아파오기도 했다. 하지만 향숙씨는 임신을 핑계로 몸을 사리지는 않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일도 하는 것이 순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임신 8개월 만에 조산 위기를 맞게 됐다.
"수술하기 전에 의사가 아이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큰 아이 심장소리입니다' '작은 아이 심장소리입니다'라고 했어요. 수술만 하면 두 아이를 안고 집으로 가겠지 했지요. 그런데 수술실에서 '보호자도 없는데... 산모는 어떻게 해?'라고 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그때까지도 몰랐어요."
향숙씨는 병실을 지키고 있던 남편이 잠깐 할머니 이사를 도와드리러 간 사이 분만을 했다. 갑작스럽게 잡힌 수술 일정 때문에 미처 남편에게 알릴 겨를도 없이 수술을 한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할머니 이사를 도와드리러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신생아실에서 두 아이를 보고 왔다는 남편은 큰 아이가 조금 아프지만, 곧 나아질 것이니 아무 걱정 말라며 위로를 했다.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수술 자리가 아물지 않아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배를 끓어 안고 아기를 보러 갔어요. 그 작은 것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코에 호스를 끼고 있는데 얼마나 안타까운지 눈물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인큐베이터에서 며칠 치료받으면 좋아질 줄 알았어요."분만 시 삼킨 양수가 폐로 넘어가 심각한 신생아 폐렴이 와 있는데다 5분간 무호흡 상태에 있었던 현호. 병원에서는 이미 70% 정도의 뇌성마비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현호 아빠는 아내가 받을 충격을 생각해 말하지 않았다.
"날짜가 지나도 아이가 좋아지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에게 다그쳐 물었더니 다 털어놓으면서 펑펑 울더라고요. 저도 남편을 붙잡고 펑펑 울었지요. 하지만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처음에 아기가 위험하다고 할 때 기도했데요. 평생 누워만 있어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고요. 살아서 부모 곁에 있게만 해 달라고요. 그러니 장애가 있지만 우리 곁에 남겨주셨으니 감사하며 사랑하고 살자고 하더라고요." 현호는 20일 만에 퇴원했다. 엄마는 뇌성마비 가능성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6개월쯤 되니 현호의 상태가 쌍둥이 동생 현준이와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함께 태어난 현준이가 앉고, 기고, 서고, 걷는 동안 현호는 누운 몸을 일으킬 줄 몰랐다.
장애 안고 태어난 현호, 웃음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