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서 2010년까지 연도별 아파트 평당 가격
이지영
2007년 재무상담에서 만난 한 부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기만 했던 집값 상승의 대열에서 나만 소외되었다는 위기감을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하루는 퇴근해서는 회사 휴식시간이 너무 싫다고 하더라구요. 2004년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동료 중에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이 있거든요. 저희는 대출을 1억 가까이 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부담스러워 전세를 선택했구요. 그런데 몇 년 후 집을 산 동료는 휴식시간마다 집값이 3000만 원 올랐다, 5000만 원 올랐다며 자랑을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집을 안 산 게 후회되고, 이제는 1억이 아니라 2억을 대출받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동료와 이야기하기도 싫고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집이 있어도 가난합니다"라는 말은 집 없는 사람들의 시기 정도로 치부되었다. 2008년 3월쯤
"강남 10억 아파트 주인? 축배는 이르다"라는 유주택 빈민(당시에는 하우스푸어라는 단어가 없었다.)의 실상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다.
그 기사의 댓글을 보면 "집값이 떨어지는 거 걱정하는 것 보다 운석충돌이나 걱정하는 게 낫지", "대박을 맞은 사람을 놓고 뭘 주장하려고 해"라는 식으로 집값 올라서 부럽기만 한데 뭐가 문제냐 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는 분명 집을 가진 사람이 부자처럼 보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처럼 보였다.
'집값 상승=자산 증식'은 틀린 공식그런데 집값이 올랐다면 정말 부자가 된 것일까? 흔히들 우리는 집값 상승=자산 증식이라고 생각하고 내 자산 계좌가 불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자산계산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부동산은 내가 지금 사용하는 자산(사용자산 또는 심리적 자산)이지 쓸 수 있는 돈으로서의 자산(실제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값이 올랐다고 해도 현실통장에는 돈이 불어나지 않는다. 집은 내가 주거용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단순한 사용자산일 뿐이다. 자산은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지만 집은 그렇지 못하다. 1평만 떼서, 화장실만 떼서 팔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만이 가능하다. 집값이 올라도 내가 돈이 필요하면 빚을 내야 하는 현실은 집이 있으나 없으나 같다는 뜻이다.
집을 파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3억짜리 집을 5억에 팔아서 2억을 벌었다라고 단순히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나는 주거를 위해 집이 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집만 오른 것이 아니다.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3억이 아닌 5억이 필요하다. 결국 나는 5억을 들여 집을 사야 한다. 내 통장에 남는 돈이 없는데 돈을 벌었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정말 돈을 번다고 한다면 3억으로 더 작은 집을 사거나 아님 전세를 살아야 하는데 과연 5억짜리 집에 살던 사람이 더 작은 집이나 전세에 살 수 있을까? 이렇듯 집처럼 반드시 필요한 자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사용자산은 그저 내가 사용하는 데 쓰일 뿐 그 값이 오르건 내리건 간에 실제 내 통장계좌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지금 하우스 푸어가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집값 상승=자산 증식이라는 생각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착각이었다는 것, 집은 안전한 주거를 보장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이 두 가지를 인지하는 것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집값이 올랐어도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집값 상승분은 내 마음 속 심리계좌에 들어간 돈일뿐이고 내 통장에 현금으로 불어난 돈은 없어 내 일상은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빚을 내 집을 사고, 생활을 하는 악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