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석회암 층층의 꽝시폭포...
서유진
하지만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나는 윤미와 서희를 데리고 루앙프라방 국립병원에 갔다.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 나는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갓난아기를 수술하고 있는데, 흔히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다. 수술 공간에 아무런 통제도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음은 물론이고, 간호사 예닐곱 명이 수술대를 빙 둘러섰는데 수술복은 물론이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평상복 차림이었다.
무슨 해부학 실습시간에 간호학과 학생들이 교수의 시범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풍경이었다. 한 의사가 윤미의 상태를 보더니 수술대에 누우라고 했다. 의사는 영어가 서툴었는데, 마취도 없이 곧바로 찢어진 입술을 꿰맬 태세였다. 윤미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나 역시 깜짝 놀라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 나서 'Big Tree Cafe'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어만 볼 생각이었는데, 고맙게도 그녀는 루앙프라방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 한국인 목사님 한 분과 함께 바로 달려왔다. 라오스 말에 능통하신 목사님이 의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목사님은 자신도 처음에는 시설이나 병원질서가 제대로 안 갖춰진 이곳 모습에 많이 놀랐지만, 이곳 의사들의 수준이 높고, 루앙프라방 최고의 병원이니까 안심하라고 해줬다.
그날 윤미는 마취도 하지 않고 세 바늘을 꿰맸다. 수술할 동안에는 잘도 참던 윤미가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가만히 안아 다독여주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낯선 이국의 땅에서 부모도 없이 어수선한 응급실에 누워 말도 통하지 않는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으며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웠을까. 그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데도, 엉뚱하게도 녀석이 눈물을 그치자마자 내 입에서는 웅크리고 있던 전혀 다른 말들이 튀어나왔다.
"왜 트럭에 남자애를 안 태우고 희경이를 태웠어? 응?""저도 희경이가 타려고 해서 '어'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아파서 정신도 없고 해서... 그냥..."뻔히 그 상황을 알면서도 내 입에서 나오는 나의 말을 나 또한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이상 할 말을 못 하고 서 있는데, 윤미가 쭈뼛거리며 말한다.
"삼촌, 죄송해요. 삼촌이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잘 알아요..."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해야 하는 윤미에게도 미안하고, 라오스의 남성들을 모두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해버린 것도 안타깝다. 아내와 둘이 여행하는 것과 청소년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것은 그렇게 달랐다.
그날 아이들은 참 많이 울었다. 다쳐서 울고, 다치고 보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고, 사라져버린 언니가 걱정돼서 울고, 서로 싸우느라 울고, 무사해 기뻐서 울고, 옆의 친구가 우니까 따라서 울고... 많은 눈물을 흘린 만큼 아마 그날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씩 더 다가가게 된 날일 것이다.
그날 저녁 아이들은 그렇게 힘든 날이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놀았다. '완주'한 녀석들은 '꽝시폭포 1km'라는 이정표를 봤을 때의 그 희열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이란 존재는 놀랍고도 신기하다. 무섭도록 천둥치고 비가 퍼붓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더 파랗고 더 맑게 개곤 하는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닮았다.
▲꽝시폭포 입구의 가슴반달곰들....
서유진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 신수경(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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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기 쓰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다. 힘들다. 너무! 그리고 다리도 너무 아프다. 오늘은 '꽝씨 폭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날이다. 나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빨리 자전거를 탔으면 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쉬운 일이 없다. 처음에 11명이 줄을 맞춰서 자전거를 타자니 몇 명은 빠르고 몇 명은 느려서 맞추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자전거와 자전거가 부딪쳐서 넘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처음에는 길이 험하지 않았지만 가면 갈수록 길이 꼬불꼬불 해지더니 오르막길에서는 체력소모가 돼서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까지 했다.
땀도 흐르고 힘들었는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이런 표지판에 있는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엎어지고 말았다. 다리가 까지고 피가 났다. 때마침 희경언니하고 성호오빠가 와서 내 다리를 치료해주었다. 하지만 내 다리가 다친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서희와 윤미언니는 자전거를 타다가 너무 삼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둘은 먼저 트럭을 타고 병원으로 갔다. 나는 자전거를 다시 타고 폭포까지 계속 달렸지만 너무 불안했다. 계속 서희와 윤미언니가 생각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심하게 다쳤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자전거를 타는 내내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 생각을 잠시 접고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폭포를 향해 갔다. 진짜 가는 길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이다. 훗! 하지만 그 험한 길을 뚫고 나는 폭포까지 자전거를 타고 도착을 했단 말이다!! 모두들 나를 받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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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가 된 언니 - 서유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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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4명이 탄 뚝뚝을 타고 폭포에 가기 시작했다. 길도 예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있어 자전거 탔음 재밌겠다 싶었다.
그런데 정작 폭포에 도착하니 언니와 희경 언니가 없는 것이었다. (중략) 한 10분 후 얼굴이 죽사발이 된 언니가 소독약 냄새를 풍기며 오는데 눈물이 왈칵 흐르면서 언니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원체 슬픈 영화나 소설을 봐도 잘 안 울고 내 일이 아니면 거의 울지 않는 내가 저렇게 다친 언니의 모습과 그래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울었나 보다. (중략) 결국 아랫입술을 세 바늘 꼬맨 언니는 안젤리나 졸리 입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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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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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서 길 잃은 아이들... 안젤리나 졸리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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