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소비예산표어디에 얼마를 쓰고 사는지를 정리하면 버는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가 한 눈에 보이게 된다. 이를 토대로 항목별 소비 예산을 수립하여 정해놓고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박미정
"살림이란게 어느 누구만의 몫은 아니잖아요. 부부가 돈 벌어오는 것과 가정을 돌보는 것으로 역할분담을 했다고 해도 아이들에 관한 결정이나 양가 가족들에 대한 결정 등 각종 경제적 의사결정은 서로 살림 내역을 알고 같이 내려야 하는 거죠. 그런데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알아서 관리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제게 가장 큰 고통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보다 남편이 훨씬 더 꼼꼼한 성격이거든요."
누가 더 씀씀이가 헤픈지 볼까?돈 얘기만 나오면 남편과 싸우게 되는 통에 주미경(35, 기혼, 가명)씨도 가급적 남편과는 돈 얘긴 안하는 편이라고 한다.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수입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아슬아슬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냥 서로 결혼 전부터 하던 저축이나 보험은 그대로 각자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되어 빠져 나가고 있어요. 장볼 때 각자 번갈아가면서 내고, 공과금은 제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빠져나가요. 대출이자는 남편이 갚고요. 그러다보니 우리 집이 한 달에 얼마 쓰고 사는지 정말 알 수가 없더라구요."문제는 남편이 미경씨더러 씀씀이가 크고 헤퍼 돈을 모으지 못한다고 타박한다는 데 있다. 미경씨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도 사회 생활하는 사람이다보니 다른 가정주부들에 비해 옷 사고 머리하는 데 돈이 조금 더 들 뿐이죠. 정작 자기는 대단히 알뜰하게 사는 척 하지만 DSLR, 아이패드, 신형 스마트폰 같은 거 아낌없이 질러대면서 누굴 탓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1년 동안 돈 쓴 거 합산해보면 오히려 저보다 남편이 훨씬 많이 쓸걸요." 부부가 지출 경쟁하자는 것도 아니고, 왜 서로 돈 관리를 통합하지 못할까. 미경씨는 그저 습관이라고 했다.
"뭐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결혼 초부터 이렇게 자연스레 살아왔으니까요. 통합해서 운영하려고 생각해보니 엄청난 일이더라구요. 저도 나중에 급한 일 생기면 쓰려고 남편 몰래 모으는 돈이 있는데 이것까지 통합해서 알려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결혼, 공동의 살림을 운영하는 것지출내역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결혼의 경제적 의미가 단순히 나와 너의 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 너가 만나 '우리'를 이루게 되면 이 '우리'를 위한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게 된다. 공동의 주거에 소요되게 마련인 비용도 그렇고, 자녀들이 태어나거나 양가 가족에게 들어가는 비용 등이 그러하다. 공동의 비용을 제하고 각자의 용돈을 책정하여 일정 범위 내에서 자신의 소비 스타일에 맞게 돈을 쓸 수 있어야 경제적 건강성이 유지된다. 너무 '우리'를 위해서만 희생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지치고 힘든게 사람이니까.
지출을 하고 난 후에 결산을 하면서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면 당연히 여기에 돈 왜 썼느냐며 싸움나기 십상이다. 각자 삶의 우선 순위도 다를 수 있고 돈 쓰는 성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 국가에서도 1년 동안 어디에 어떻게 돈을 쓸 지 '예산안'을 먼저 짜게 된다. 그리고 나서 연말에 예산안을 토대로 결산을 한다. 결산의 기준은 돈을 얼마나 많이 남겼는가가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잘 썼는가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을 때는 이러한 공동의 예산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디에 어떻게 얼마 정도를 쓰겠다는 공동의 의사결정 없이 마구 필요하다고 써댄 후 결산할 때 많이 썼느니 적게 썼느니 티격태격 해봐야 살림에도 부부 사이에도 뭐하나 득될 것이 없다. 어디에 얼마 쓰자고 사전에 부부가 협의하여 가정의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일은 괜한 돈 문제로 싸움을 만드는 80% 이상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
부부간 계좌통합, 그리고 예산을 정해놓고 쓰는 훈련외식할 때마다 괜시리 돈을 함부로 쓰는 것 같아 잘 먹고도 마음이 불편했다는 미경씨는 생활비 예산에 외식비도 함께 책정하였다.
"기본적으로 먹고 일상 생활하는 데 저희 집 예산이 한 달 40만 원 들더라구요. 외식비는 따져보니까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들구요. 그냥 둘 합쳐서 한 달 50만 원으로 예산을 잡았어요. 외식을 많이 하면 쓸 수 있는 생활비가 줄어드는 거고, 생활비를 아끼면 정해진 돈에서 외식해도 부담스럽지 않구요. 정해놓고 쓰다보니까 외식도 자주하기보다는 어쩌다 한 번이라도 좋은 걸 먹자고 하게 되요. 그래도 예전처럼 괜시리 낭비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아요."이제 부부가 계좌를 통합관리해야 할 때다. 계좌만 통합해선 안 된다. 하루 날 잡아서 어디에 얼마 정도가 들어가는지를 쭈욱 정리해보고, 우리 집 한달 지출에 대한 분야별 예산을 더불어 정해야 한다. 양가 부모님의 용돈도 더불어 정하고, 경조사 금액도, 한 달 생활비도, 부부 각자의 용돈도, 아이들 교육비도 의논해서 결정하자.
아껴쓰는 것, 돈 잘 모으는 것보다 우선 중요한 것은 어디에 얼마 정도를 쓰고 사는 것이 우리 가정의 최적의 지출 수준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런 공동의 예산 정책 수립이야말로 부부를 진정 인생의 동반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박미정 시민기자는 현재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지속가능한 경제적 자립을 돕는 교육활동가 및 생활경제상담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는 소중한 돈 잃지 않고 제 때 잘 쓰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과 안정을 위한 자세한 정보는 네이버 ‘푸른살림’카페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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