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가 투입된 충남 홍성군 금마면 ㅇㅇ마을 상수도 급수탑
홍성신문 정명진
지난 달 20일, 충남 홍성에서 마을주민 220여 명이 이용하는 물탱크에 농약을 살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이 알려진 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물탱크 농약사건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겪었던 학교 급식소 살충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1979년 9월 어느 날, 누군가 학교 급식소 대형 국솥 등에 살충제를 뿌려 놓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농어촌급식시범학교로 선정돼 점심때마다 매일 찐빵과 끓인 분말 우유 또는 미역국, 삶은 달걀 한 개씩을 급식했다.
초라했지만 급식소가 따로 설치돼 있었고, 이곳에서 학교 선생님은 물론 전교생 500여 명이 당시 돈으로 월 500원을 내고 점심을 해결했다. 매월 밀린 급식비를 놓고 졸업식 전까지 담임선생님과 전쟁을 벌여야 했지만 이마저 없었다면 오지 학교에서 태반은 점심을 굶어야 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누군가 500여 명의 학생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솥과 조리대 등에 맹독성 농약을 뿌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급식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기 직전 농약 냄새가 진동을 하자 신고해 별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일로 당시 초등학교 동창들은 졸업여행은 물론 가을소풍, 가을운동회가 없는 6학년을 보내야 했다. 학교 측이 별다른 설명 없이 모든 행사를 전면 취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부분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학교에는 경찰이 상주했고 전국 밤 뉴스에 우리 학교가 연일 등장했기 때문이다.
급식소에 농약을 뿌린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어느 날인가는 수업시간에 경찰이 교실로 들어와 담임선생님에게 수사협조를 요청하더니 나를 불러냈다. 경찰은 학교 급식소 뒤로 데려가서는 움푹 파여 있는 흙 발자국 위에 내발을 대보라고 요구했다.
의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검정 고무신을 신은 발과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경찰은 이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는 전날 학교 농기계실에 들어간 이유와 시간을 캐물었다. 사건 전날 나는 한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급식소 옆에 있는 농기계실에서 모종삽을 꺼내왔고 간단한 작업을 한 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었다.
경찰은 문제가 된 살충제가 농기계실에 보관돼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다그쳐 물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경찰은 농기계실로 나를 데려가더니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을 하는 사복 경찰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고 매우 위협적이었다.
"문이 어떤 상태였지? 잠겨 있었어?" "모종삽 바로 옆에 농약이 있었는데 못 봤다는 게 말이 돼? 똑바로 말 안 해?" "나오면서 농기계실 문에 철사 고리는 채웠어?" "교실로 가봐. 오늘 물어본 얘기는 누구한테도 해서는 안 돼. 알았지? 왜 대답 안 해?" 그날 경찰의 취조 내용은 담임선생님은 물론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선명히 각인돼 있다. 이 일을 겪은 이후 교과서에 등장하던 '인상 좋게 웃고 있는 선한 경찰관'의 모습을 머리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던 며칠 후 갑자기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조회가 열렸다. 교장 선생님이 한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게 됐다고 소개했고, 해당 선생님이 조회대에 올라 짧게 인사했다. 이날 조회는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는 사이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 선생님이 조회대 앞에 세워져 있던 경찰차에 형사들과 함께 타는 모습을.
그로부터 며칠 후 학교 안에는 '급식소에 농약을 살포한 범인이 ○○○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곧 겨울이 찾아왔고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린이 인권'의 현실을 돌아보는 어린이날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