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한지민 분).
SBS
첫째, 사대부 아가씨들의 체면이 손상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꼭 사대부 가문의 딸이라야 간택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집안의 딸들이 주로 참가했기 때문에 그들의 체면 손상을 우려했던 것이다.
공개 오디션에서는 참가자가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포장할 수밖에 없다. 목소리도 평소와 달라지고, 행동도 조금은 가식적으로 바뀌게 된다. 사대부들은 자기 딸들이 그런 식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불쾌해했다. 사대부 가문의 체통이 깎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둘째, 신부 집안의 결혼 주도권을 침해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려실기술> 권12에 따르면, 사대부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행동하는 것이 예법'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신랑이 신부 쪽으로 찾아가는 것이 예법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 남자가 사는 궁궐에 찾아가서 간택 심사를 받을 경우, 신랑 쪽이 결혼의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결혼문화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한민족의 결혼문화에서는 신부 쪽이 주도권을 잡았다.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결혼식을 거행한 뒤 그곳에서 일정 기간 살다가 신랑 집으로 가던 풍습이 그 점을 증명한다.
5만원권 모델인 신사임당이 자기 고향인 강릉에서 율곡 이이를 출산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신사임당 부부는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이를 출산한 뒤 신랑 집으로 갔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까지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신부 쪽이 결혼식을 주도하는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신부 후보가 신랑 집(궁궐)에 가서 심사를 받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신랑 쪽에게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대부들은 간택이 예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마디로, '무(無)매너'의 제도로 본 것이다.
셋째, 군주는 현명한 아내를 얻으려면 온 천하를 다 뒤져야 한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사대부들은, 군주는 현명한 인물을 구하는 심정으로 현명한 아내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주문왕(주나라 문왕)과 강태공의 사례를 거론했다. 주문왕이 인재를 얻고자 천하를 떠돌다가 강태공을 어렵사리 발굴했듯이, 왕이나 세자도 그런 심정으로 배우자를 물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집에 앉아서 오디션을 열 것이 아니라, 길거리로 나가 적극적으로 캐스팅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왕실에서 굳이 간택제도를 고집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