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 4일 윤석양 이병이 폭로한 보안사 민간사찰 자료
연합뉴스
국군 보안사령부의 조직적인 민간인 사찰이 세상에 처음 드러난 것은 지난 1990년 10월이었다. 당시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의 보호 아래 보안사가 정당·언론·재야 등 각계 주요인사 1300여 명을 사찰해온 사실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군과 관련된 첩보 수집 및 수사로 직무가 제한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은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전문용어(?)로 '대(對)전복', 즉 쿠데타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한 군에 대한 '동향 관찰'이 '체제 전복' 혐의가 있는 민간으로까지 스멀스멀 확대된 것이다. 국가기관의 불법행위가 온존할 수 있었던 것은 군 정보기관이라는 조직의 특성과 끼리끼리의 패거리 의식 때문이었다.
이 사건의 여파는 컸다. 이로 인해 보안사령관은 물론, 국방장관까지 옷을 벗었다. 보안사령관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은 보안사를 기무사로 바꾸고 조직을 개편했다. 사법부도 민간인 사찰을 불법행위로 판결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98년 7월 대법원은 보안사의 사찰대상자였던 당시 한승헌 감사원장과 노무현 의원, 그리고 박원순 변호사 등 14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는 한 감사원장 등에게 각 200만 원씩, 모두 2억9천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보안사의 사찰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는 점에서 사법부 판결은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한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단죄였다. 정치적으로는 군의 정권 사병화(私兵化)에 대한 경종이었다. 특히 '체제 전복' 혐의로 사찰을 받은 재야 변호사 3인이 나중에 공직기강을 다스리는 감사원장과, 수도 서울의 시장, 그리고 국군을 통수(統帥)하는 대통령에 오른 사실은 보안사가 어두운 골방에서 얼마나 허접한 짓을 하고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MB정부 민간인 사찰은 군사정권 시절에 본 기시감(旣視感)그런데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이 폭로된 지 20년 만에 민간인 사찰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2010년 6월 21일 신건 의원(민주통합당, 전주 완산갑)은 국회 정무위에서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사실을 폭로했다. 신 의원에 따르면, 국무총리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9월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링크한 김종익씨를 내사하고, 김씨 회사에 용역을 준 은행을 찾아가 김씨 회사와 거래를 끊으라고 압력을 행사해 결국 김씨는 대표이사직을 내놓아야 했다.
문제의 동영상은 재미교포 학생이 미국의 한 사이트에 올린 것으로 당시 접속자만 180만 명에 달했고, 이미 국내의 여러 블로그와 UCC 게시판에 게시된 것이었다. 김씨는 그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단순 링크만 해놓았을 뿐이었다. 게다가 김씨의 블로그는 하루 방문자가 20명도 되지 않은 '듣보잡'이었다. 그런데 공직자 비위를 단속하기에도 바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검색해도 찾기 힘든 김씨 블로그까지 색출해 내사를 하고 압력을 행사해 회사를 강탈한 셈이다. 수십 년 전에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이다.
개인의 장학회를 강탈해 '정희'와 '영수'의 장학회로 만든 수법을 떠올리게 하는 공권력의 횡포와 직권 남용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원관실 직원들은 김씨 회사 사무실에 가서 회계 자료와 디스켓을 압수해 분석한 뒤에 '김씨가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그 결과를 보고해 줄 것을 공문으로 요청했다. 경찰에 '청부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이 또한 검찰에 '기소 청탁'을 한 어떤 판사의 불법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검찰·경찰·국세청·금감원 등에서 파견된 40여 명의 직원이 감찰활동을 벌이는 '관가(官街)의 암행어사'로 통했다. 그러나 암행감찰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민간인은 대상이 아니다. 법무부 차관을 지낸 신건 의원은 당시 "이런 행위는 헌법이 규정한 영장주의를 위배하고 형법 123조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감찰 기능이 적절한 통제, 정상적인 통제를 받지 않으면 권력의 하수인이 되고 사병화되는 것입니다. 아무 공직과 관계없는 개인을 압수수색, 조사하고 또 거래처에 압력을 가한다면 감찰 기능을 가진 기관이 점점 무소불위로 불법화, 불법행위를 한다고 볼 수밖에 없잖아요. 결국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군사정권 때부터 문민정부까지 존재했던 사직동팀의 말로를 겪을 겁니다. 결국 다 나중에 처벌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런 불법·위법 행위를 하게 되면 국민이 언젠가는 이 정부를 저버리게 될 겁니다. 경고합니다."<이털남>이 공개한 육성 대화 '공직윤리파괴관실' 입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