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하동 지역 주민들이 20일 오전 국회 남문에서 농어촌 선거구 유지를 요구하며 국회로 진입을 시도하다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날짜가 50일도 채 안남았는데 선거라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연일 폭력 속에서 공전하고 있다. 당장 중앙선관위는 선거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고, 유권자들은 혼선을 겪고 있다. 정개특위 회의장 주변은 날마다 고함과 몸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멀쩡한 선거구가 갈기갈기 찢어질 위험에 처한 남해·하동과 담양·곡성·구례의 주민들은 연일 상경 시위를 벌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국회는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돌아간다. 국정감사도 소관 상임위 별로 실시하고, 예산안 심의·확정과 부수법률안 처리도 상임위 별로 이뤄진다. 국회는 16개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위, 윤리특위 등 2개의 상설 특별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이외에도 남북관계발전특위와 정치개혁특위, 독도영토수호대책특위 등 한시적으로 설치된 특위가 7개 더 있다. 국회는 해마다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들 특위의 활동 기한을 연장한다.
정부가 제출한 예결산 심의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국회의 권능으로 보면 가장 중요한 특위로 예결특위와 정개특위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핵심 특위의 또 다른 공통점은 국회가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는 점이다. 그 무림신공(武林神功)의 주특기는 기네스북에도 가끔 오르내리는 '날치기'와 '벼락치기' 그리고 '후려치기', 이른바 '3치기'다. 이유는 단 하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다.
국회 무림신공의 주특기는 '날치기·벼락치기·후려치기'먼저 '날치기' 기술은 설명이 불필요한 낯익은 신공이다. 여야는 예산안 처리 때마다 거친 몸싸움 끝에 여당의 '날치기'와 야당의 의사일정 거부로 국회가 마비되는 구태를 반복해왔다. 18대 국회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새해 예산안 '날치기'라는 오점을 남겼다.
뭐,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한나라당에만 '날치기' 오점이 있는 건 아니다.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지키지 못한 것은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던 17대 국회를 포함해 9년째다. 그런 판국에 예산안 심의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결국 예산안은 '벼락치기' 졸속 심의가 될 수밖에.
'벼락치기' 다음에는 '후려치기' 기술이 들어간다. 예결특위 위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비법이다. 최대한 예산 심의기한을 늦췄다가 막판에 후려쳐서 삭감하는 것이다. 많이 깎아 놓아야 국회의 재량권이 커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에 들이민 민원성 '쪽지 예산'만도 1조 원이라는 얘기가 있다. 특히 야당의 처지에서는 정부예산을 최대한 후려쳐서 삭감해 놓아야 여당과 '거래'할 때도 야당 몫이 커진다.
지금 정치권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국회의원 공천 심사도 예산안 심의와 마찬가지다. 선거 승리가 지상목표인 당대표의 처지에서는 공천을 앞두고 최대한 '현역 프리미엄'을 줄여서 '물갈이' 폭을 늘려야 '전략공천'을 할 수 있는 재량권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에 기득권을 지키려는 현역 의원들은 선거구 획정과 공천 심사가 밀실에서 이뤄지는 것을 경계하기 마련이다.
선거 때마다 법을 어겨온 국회 정치개혁특위
선거라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정치개혁특위는 출범부터 여야 타협의 산물이었다. 1997년 15대 국회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대선을 앞두고 자민련과 함께 여당인 신한국당과 협상을 벌여 '여야 동수의 정치개혁특위 구성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국회법에 따르면 상임위 배정은 의석수에 따라 배분하게 돼 있다.
그러나 야당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일은 만장일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여야 동수 구성안'을 밀어붙였다. 여야 동수면 최소한 '날치기'는 막을 수 있다. 날치기가 불가능하면 여야가 서로 양보해 합의안을 낼 수밖에 없다. 그 이후 지금까지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정개특위에서 심의한 공직선거법 개정법률안은 의원 개인이 아닌 '위원회안'으로 본회의에 상정돼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온 것이 불문율이다.
역대 국회 정개특위는 그동안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등 이른바 '정치관계 3법'의 개정을 통해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는 선거제도 도입과 선거연령의 하향조정(20→19세) 등으로 참정권을 확대하고 규제 위주의 선거운동을 폭넓게 허용하는 쪽으로 기여해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개특위도 예결특위로부터 '못된 기술'만 배웠으니 그 역시 '벼락치기'와 '후려치기'다.
다시 '벼락치기' 기술을 보자.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지역구)를 획정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다. 정치 지망생들은 먼저 선거구가 획정되어야 출마 희망지역을 정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선거를 준비하며, 정당에서도 공천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그래서 공직선거법은 선거 시행일 1년 전까지 선거구를 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이 당리당략에 따라 총선에 임박해 졸속으로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선거 때마다 법을 어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