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포심양 외곽에 있으며 사신교통로다.
이정근
'이유(李瑈)를 조선국 국왕으로 책봉해주어 고맙습니다'라는 임무를 띠고 명나라를 다녀오던 사은사 한확이 귀국하던 중 칠가령에서 병이 났다. 비상이 걸린 사신단은 한확을 객관이 있는 심양으로 옮기던 중 사하포에서 죽었다. 사위인 왕세자와 세자빈이 자신의 집을 찾아와 전송연을 베풀어줄 때만 해도 객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사은사로 낙점되었을 때 한확이 수양에게 요청했다.
"첩보에 의하면 동팔참(東八站)에 군마를 가진 초적(草賊)들이 둔을 치고 있다 합니다. 약한 호송군 2백 명은 쓸모가 없으니 평안도의 갑사와 별시위에서 날쌔고 용감한 자 1백 명을 차출하여 주시고 총통군 4명에게 화포를 가지게 하여 무예가 있는 수령으로 하여금 호송케 하여 주옵소서."압록강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길은 하루 종일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은 평원을 지나고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한다. 그 중에서 천산산맥(千山山脈) 요소요소에 박혀있는 천연 요새는 도적들 소굴로 악명 높았다. 조선의 특산물과 진귀한 조공품을 바리바리 싣고 가는 조선 사신단은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치안부재를 알고 있는 명나라 병부에서 요동에 있는 군사를 붙여주지만 그들과 한통속으로 털어가는 데는 당할 수가 없었다.
산 밑을 지날 때 산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죄를 지은 자는 천둥번개가 칠 때 가슴이 쫄아 들고 산 밑을 지날 때 바위가 구르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있을까봐 단단히 준비하고 떠난 한확이 몸속의 적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조선 사신이 북경에 가기 위해 대궐을 떠날 때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임금이 직접 전송을 하는 경우도 있고 왕이 총애하는 대전 내관의 환송을 받는다. 돈의문을 나와 반송정에서 가족 친지들을 만날 때 한껏 고무된다. 수양의 외할아버지 심온은 여기에서 벌어진 너무 크고 화려한 환송연이 빌미가 되어 죽임을 당했다.
무악재 고개를 넘어 의주에 이를 때까지는 각 고을 수령들의 환송을 받으며 목에 힘을 줄 수 있다. 허나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산해관까지 참(站)이 있는 여덟 군데에서는 객관이나 여관에 들어 잠을 잘 수 있지만 그 외는 노숙해야 한다. 조선 땅에서 떵떵거리는 고관대작도 나라 나가면 개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