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취임 한달을 맞아 15일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대국민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권우성
"물가폭등 방관하는 기재부, 론스타 먹튀를 적극 도와 국부 유출시킨 금융위, 주가조작에 앞장서다 압수수색 당한 외통부, 있으나 마나한 통일부, 언론장악의 선봉장 방통위, 생태계 죽이는 환경부, 알짜 공기업 팔아넘기려는 국토부, 존재가치를 의심케 하는 법무부와 검찰, 무책임하고 무능한 내각으로는 단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국민은 정권의 마지막 1년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전면교체하십시오."대표 취임 1개월을 맞이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첫 일성입니다. 한 대표는 15일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와 확실하게 각을 세웠습니다. 허니문 기간 중엔 비교적 둥글게 말하던 편이었는데, 1개월을 기점으로 태도를 바꾼 것일까요?
우상호 민주통합당 전략홍보본부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내각 총사퇴라는 메시지는 간단한 수사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정권 말기의 새누리당과 집권을 앞둔 민주통합당 간의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이 '한미FTA 말 바꾸기'로 전선을 쳤다면, 민주통합당은 이제 정권심판론으로 압박하겠다는 것입니다. 뜨거운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일까요?
한데 아무리 꼼꼼히 뜯어봐도 한 대표의 메시지에는 현재 뜨겁게 논란 중인 한미FTA와 야권연대에 대한 입장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자들의 질의응답에서 나오긴 했지만 대표 메시지로 정리된 것이 없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5년차로 접어든 MB정권 규탄과 정권심판에 대해서는 이미 온 국민이 모두 공감하는 의제이기 때문에 별달리 새로울 것도 없고, 오히려 민주통합당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이 문제에 대해 뭔가 보여주기를 바라는 게 국민적 기대인데 그에 비한다면 실천방향이 담기지 않은 데 적이 실망하게 됩니다. 미래비전과 관련해서도 한 말씀도 없으셨지요.
이런 지적에 우 본부장은 같은 날 출범한 'MB정권 비리·불법비자금 조사특위' 활동을 주목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박영선 최고위원이 위원장을 맡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낸 유재만 전 검사와 '삼성물산 재개발 비리'를 파헤쳐 주목을 받았던 백혜련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 등 법조 엘리트들로 구성된 이 위원회가 앞으로 이명박 정권의 비리와 불법비자금 문제를 탈탈 털어 국민 앞에 그 죄상을 낱낱이 고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정권교체 전략, 제1막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매번 전략부재로 비판받던 민주통합당이 드디어 제대로 진용을 갖추고 MB와 새누리당을 향해 진격할 태세를 갖춘 것일까요? 조직적으로 MB규탄 프레임을 짜고 돌격하는 모양새를 만들어낼까요?
그런데 민주통합당 지도부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쏟아집니다.
내각 총사퇴 주장했으니 다음은 거국내각?
이인영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 과정에서 내각 총사퇴 카드로 이명박 정부와 대척점을 이루자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그저 한명숙 대표의 결기 아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또 다른 최고위원은 "워낙 이명박 정권이 아수라장이니 충분히 내각 총사퇴를 주장할 만하지만 지금 왜 그 얘기를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최고위 내부에서 그 구상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한 대표가 당 간부들과 상의해 정리한 '1개월 기념 메시지' 정도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 밖에서는 어떤 반응일까요?
민주통합당의 주요 야권연대 대상인 통합진보당의 한 관계자는 "자다 봉창 두드리느냐"며 "지금 난데 없이 무슨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는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현 체제로는 안 된다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 알지만 그렇다고 지금 새 내각을 꾸린들 또 얼마나 괜찮은 인물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며 "한명숙 대표가 어떤 취지로 왜 그런 발언을 하셨는지 진의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노 대변인은 "MB정권이 잘못했으니 물러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지금 한 대표께서 거국내각을 제안하신 것도 아니라서 뭐라 언급하기 상당히 애매하다"고 전했습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내각 총사퇴를 언급했으니 이제 공동내각을 꾸리자는 것이냐"며 "거국내각 비상내각을 꾸리자는 제안도 아니니 별로 진지하게 답변할 일도 아닌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터뜨립니다.
민주통합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실효성도 없는 얘기를 대표가 왜 실없이 하신 건지 알 수 없다"며 "지도부를 살펴보면 일부는 잘해보라 관망하고 일부는 침묵하고 있으며 대표는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는 "이제 와서 전면전이라 하면 그럼 여태까지는 전면전 안 했다는 얘기냐"며 "조용환 헌법재판관 인준 부결 이후 대표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등 내부문제를 점검해야지 전혀 신중해 보이지 않는 소리로 국민들에게 비판받을 일이 무어냐"고 꼬집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