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촌에 있는 한옥
이정근
살육은 계속되었다. 이개의 아들 공회, 유응부의 아들 사수, 하위지의 아들 연과 반, 유성원의 아들 귀련과 송련, 권자신의 아들 구지, 허조의 아들 연령, 김문기의 아들 현석이 교형에 처해졌고 송석동의 아들 창, 녕, 안, 태산 등 4형제와 김감의 아들 한지와 선지, 이지영의 아들 사이, 박정의 아들 숭문, 이유기의 아들 은산, 심신의 아들 올미, 봉여해의 아들 유, 이오의 아들 철, 장귀남의 아들 충, 조청로의 아들 영서, 이호의 아들 성손이 죽임을 당했다.
이 밖에도 상왕의 외할머니 화산부원군 부인 최씨와 권서, 권저, 이말생, 최사우, 이휘, 김구지, 이정상, 최치지, 정관, 심상좌, 황선보가 교형에 처해졌고 주인을 잘 못 만난 종 계남, 무손, 금, 구령, 즉동, 득지가 죽음을 면치 못했다. 김질의 고변으로 불거진 복위사건으로 8백여 명이 희생되었다.
줄초상 당한 북촌, 관운 펴지기는 커녕 빛 좋은 개살구더라북촌(北村). 왕족은 물론 정승판서와 당상관 이상 사대부들이 선호하는 주거 밀집지역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어 대궐에 드나들기 편리할 뿐만 아니라 관운이 열린다는 속설이 있는 동네다.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았다는 일단의 술사들은 '그 얘기는 기(氣)가 센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기(氣)가 약한 사람은 기(氣)에 치어 기(氣)가 죽는 흉골(凶谷)'이라고 혹평하는 두 얼굴의 동네다.
아니나 다를까. 한집 건너 한집에 초상이 났고 한 골목은 줄줄이 곡소리가 이어졌다. 기(氣)가 센 터를 피해 돈의문 밖으로 나간 김종서도 죽었으니 터와 죽음은 별 관계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