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의 국사당 터.
김종성
영적 능력, 어디서 생긴 것일까?이처럼 무속신앙과 가까운 지식인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은 것은 그들의 영적인 능력 때문이었다.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미래까지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의 주 무기였다. 그럼, 그런 능력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
현대의 무당들과 마찬가지로 고대의 신관들은 자신들이 신을 비롯한 초자연적인 존재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정말로 그랬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전체 우주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상식만으로 고대 신관들의 말을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인간 사회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공감하는 보편적인 인식 방법이 있다. 현재로서는 그런 방법에 의지해서 고대 신관들의 실체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최선인 그런 방법을 동원해서 고대 신관들의 후계자인 현대 무당들을 관찰한다면, 그들의 실체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009년에 작고한 서정범 교수(민속학자·국어학자)는 무속신앙에 흥미를 느껴 1950년대부터 약 3000명의 무당과 인터뷰를 했다. 그가 쌓은 학문적 성과가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대답 중 하나를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서 <한국 무속인 열전>에서 서정범은 "무녀들은 뇌파에 의해 손님의 잠재의식을 해득하는 능력이 있다"고 정리했다. 1998년 7월 16일호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무속인은 상대방이 방출하는 기(氣)와 거기에 담긴 정보를 해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기'는 뇌파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무당은 뇌파에 담긴 정보를 해독해서 상대방의 과거를 파악하고 과거에 대한 지식을 기초로 상대방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서정범의 결론이다. 일반인들이 역사에 대한 정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점을 친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각 분야마다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한국사에는 한국사 나름의 패턴이 있고, 경제사에는 경제사 나름의 패턴이 있다. 이런 패턴들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 또한 향상될 수 있다. 무당도 그런 원리로 점을 친다고 생각하면 서정범의 결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도 처음 만난 사람의 행색이나 인상 등을 보고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 왔겠구나'라고 추측하고, 더 나아가 '이 사람은 앞으로 이렇게 되겠구나'라고 예측할 때가 많다. 사실, 모든 인간은 조금씩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당들의 경우에는 그런 능력이 특히 전문적으로 발달했을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영적인 능력이 전문적으로 발달한 탓에, 무당들은 일반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고 민감하다. 무당들이 멀쩡한 사람을 보고 나비나 꽃 혹은 동물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례가 많은 것은, 그들이 시인들보다도 더 민감한 감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은 느낄 수도 없는 인간의 뇌파까지 감지할 수 있으니, 그들의 감수성은 시인들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무당이 과학자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뇌파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인 혹은 후천적인 계기에 힘입어, 뇌파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앞날을 예견하는 능력을 자기 자신도 모르게 갖추게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무당이 24시간 내내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중 일정 시간 동안은 무당도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몸에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동자'가 들어왔다고 느끼는 순간, 무당은 일반적인 인간에서 영적인 인간으로 바뀐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