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중국 땅이다. 사신의 주 교통로였다.
이정근
가노(家奴) 점복이가 사랑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대감마님! 군부인 마님께서 뵙기를 청합니다.""지금 삼책(三策)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잠시 후에 부르겠다고 전하라."수양은 신숙주, 권람, 한명회를 삼책사(三策士)라 여기며 자랑스러워했다. 세 명 중 두 사람과 같이 있을 때에는 이책(二策), 단둘이 있을 때는 한책(一策)이라 농(弄)했다. 그 한 사람이 한명회가 되었을 때는 환상의 조합이었으며 기발한 작명이 된 셈이었다.
안평은 이현로, 김종서는 김승규 한 사람뿐이었으나 자신은 조선 팔도에서 내노라하는 세 사람을 거느리고 있으니 와룡을 얻은 유비가 부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두 계실 때 뵙기를 원한다 하옵니다.""이런 난감할 데가 있나?"짜증스러운 혼잣말에 이어 수양의 목소리가 마당으로 튀어나왔다.
"들라 이르라."불쑥 찾아온 군부인, '드릴 말씀이 있으니 좌우를 물리쳐 주세요'군부인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조신한 걸음걸이다. 신숙주, 권람, 한명회가 놀란 눈으로 군부인을 쳐다보았다. 치맛자락을 잡고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 선녀와도 같다.
"나랏일을 논하는 자리에 아녀자가 끼어드는 것은 도리가 아니오나 아버님께 용서를 빌 일이 있어 이렇게 불쑥 찾아뵈었으니 용서하십시오."3인방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군부인이 수양대군에게 절을 올렸다. 곱다. 과연 미녀 집안의 후예답게 절하는 뒤태마저 아름답다.
"그래, 용서라는 것이 무엇이냐?"수양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군부인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아버님께서 여기 계신 분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용서해 주소서."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고얀 일이 있는가?"불쾌한 표정이다. 군부인이 다시 일어나 절을 올리려고 손을 이마에 갖다 대었다.
"새아기가 왜 이러냐? 그냥 앉거라."사대부집안에 없는 법도다. 허나 군부인은 다시 절을 올렸다.
"저는 아버님의 며느리이고 아버님의 손자 정(婷)의 어미입니다. 세작이 아니오니 너그럽게 용서하소서."팽팽한 긴장 속에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아슬함이 3인방을 흔들었다. 그렇다고 채신없이 웃을 수도 없다.
"누가 널 첩자라 했느냐? 그래,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이냐?""아낙은 아낙다워야 한다는 불문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녀자가 외람된 말씀을 드리면 아버님께서는 십분 이해해 주시겠지만 다른 분들은 저어될까 봐 염려되오니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당돌하다. 어제 얘기한 것을 엿들었다는 것까지만 공개하고 수양의 3인방을 내쫓아 달란다. 신숙주, 권람, 한명회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가는 한명회와 군부인의 시선이 마주쳤다. 차갑지 않는 눈길이다.
"그래, 얘기를 들어보자."멍석을 펴놨으니 마음대로 이야기 해보란 듯이 마음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