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 <동백 아가씨> 중. 2009년 10월 방송 분
KBS 방송 갈무리
말도 안 되는 이유도 많았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은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그리워하느냐며 금지 딱지를 붙였다. 특히 <동백 아가씨>은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대목에 시비를 걸었다. 아마도 "빨갛게 멍이 들었소"가 문제가 됐을 것이다. 당시 빨간색은 공산주의를 연상시키는 것이어서 무조건 반체제와 동일시됐다.
한대수의 <행복한 나라>도 비슷한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행복한 나라가 어디냐' '박정희 치하에서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냐' '어떤 유토피아를 노래하는 것이냐'는 지적이었다.
이런 정치적인 이유 말고 괴상한 억지로 금지시킨 곡도 적잖았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코미디였다.
코미디성 시비를 당한 대표적인 노래가 김추자의 <거짓말이야>이다. "거짓말이야!"를 외쳐서 불신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참 소가 웃을 일이다. 배호가 부른 <0시의 이별>은, 통행금지 시간이 0시인데, 그 시각에 이별해서 어디로 간단 말이냐고 다그치면서 금지곡으로 묶어버렸다. 이후, 1980년대 심수봉이 부른 <순자의 가을>은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금지곡이 된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의 획일적인 기준으로 오늘날의 대중가요 가운데 금지곡을 뽑는다면 어떨까. 백지영의 <사랑 안 해>는 심각한 사회 문제인 '저출산'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원더걸스의 <소 핫(So Hot)>은 세계적 난제인 온난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선정의 영예를 안을 것이라고들 한다.
시와 소설, 대중가요와 영화, 심지어 머리와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독재정권이 사회문화 통제를 감행하면서 들이댄 사유를 보면 하나같이 그 의미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문화의 적은 획일성이고, 자율의 적은 통제다.
핀란드의 국민기업으로 세계적 휴대전화 생산업체인 노키아의 현관에 들어서면 벽에 사시(社是)가 걸려 있다. '총화단결'이나 '조기달성' 따위의 구호가 아니라 '서로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ly)'고 쓰여 있다. 아하, 이것이 바로 인구 530만 명도 안 되는 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 부국이 된 바탕이다. 우리는 그처럼 다양성과 자율성이 존중받는 사회 환경에서 가치 창조의 에너지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랜 개발독재 정권 아래서 찌들어버린 우리의 사고와는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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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치학과 학사 석사 박사, 하버드대 니만펠로십 수료. 동아일보 논설위원,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한국정치평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17대 국회의원, 방송통신위 상임위원-방송평가위원장, 서울디지털대 총장 등 역임. 현재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저서 : '한국정당과 정치지도자론' '군부와 권력' '우리시대의 정치와 언론' 외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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