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 사 누리집
H&M 누리집 갈무리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의 생활이 획기적으로 편리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 온갖 종류의 상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눈앞에 등장한다.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물건들을 소비해 주는 것이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대량 소비의 시대는 마케팅 전략을 학문으로 만들었고, 광고는 우리 삶의 배경음악이 돼 늘 곁에 머물게 됐다.
기업들이 새로운 물건을 선보이는 방식은 참으로 놀랍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의류회사인 스웨덴의 H&M은 빠르고 저렴한 패션으로 유명하다. 예전에 패션업계에서는 보통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휴가 이렇게 다섯 개의 시즌으로 나눠 새로운 상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H&M은 많게는 한 해 26개의 패션 시즌을 제시한다(<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 참고). 한 시즌이 겨우 2주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물건을 선보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 물건들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새로운 물건의 홍수 속에서 이미 가지고 있는 소유물이 점점 구식화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물건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신까지도 남들보다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용하기에 불편함은 없지만, 디자인이 뒤떨어졌다든가, 아니면 남들 것보다 조금 더 크거나, 조금 더 무겁다는 이유로 새로운 모델을 선택하게 된다.
그 결과, 멀쩡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것에 대한 마음 속의 거부감, 망설임 등은 조금씩 사라졌다. "고쳐 쓴다"라는 말은 구두쇠에게나 해당되는 말로 느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동네마다 있던 전파상(요즘 아이들은 이 단어를 알고 있을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패션이나 유행을 따라가다 보니 옷장 속에는 늘 옷이 한 가득이지만 막상 입을 옷은 없다. 올 겨울 유행 아이템을 쇼핑해야 할 것만 같다. 신상 부츠와 거기에 맞는 바지도 사고 싶어진다.
미선씨의 경우 고쳐 쓰는 것을 선택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고장'은 새것을 갖고 싶은 욕망을 합리화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왕 고장 난 김에 새것으로 바꾸면 그나마 있던 약간의 망설임도 쉽게 털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기업들이 노리는 지점도 바로 이것이다. 업체들은 수리를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상품을 사고 싶어하는 욕망을 합리화시켜주고, 소비자에게 신상품으로 바꾸라고 은밀하게 충동질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파괴하는 소비를 포기해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