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승조망도1704년 겸재 정선이 인왕산 기슭 이춘재의 저택 후원에 있는 삼승재에서 바라본 회맹단. 정 중앙 약간 위쪽 접혀진 곳에 회맹단이 있고 임진왜란때 볼탄 경복궁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오늘날의 청와대 자리다.
이정근
성북단을 찾았다. 형식은 임금이 정난공신을 대동하고 회맹제를 올리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사실은 수양이 조카를 데리고 간 것이다.
"조선국왕 신(臣) 홍위는 삼가 정난공신 숙부 영의정부사 수양대군, 좌의정 정인지, 우의정 한확, 운성부원군 박종우, 판중추원사 김효성, 의정부 좌찬성 이사철을 거느리고 감히 천지신명과 종묘사직, 산천백신(山川百神)의 영(靈)에게 고 하나이다. 내가 어린 나이에 대업을 이어 어떻게 국정을 펼칠 바를 몰라 대신에게 정사를 맡겼는데 간신 황보인·김종서·이양·민신·조극관이 조정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안평대군 이용에게 아부하고 변방의 장수 이징옥과 결탁하여 모책(謀策)을 꾸미는 것을 숙부께서 간흉을 전멸(剪滅)하고 왕실을 보전하였습니다.역적도당은 끝까지 추적하여 도륙 내어야 마땅하나 수양대군께서 온정으로 용서하고 상으로 보답하여 영세토록 하였습니다. 이에 길한 날을 골라 신명께 고하고 산하를 가리켜 맹세하여 그 우호를 영원토록 하는 바입니다.아울러 말하노니, 회맹한 신하들은 초심을 잃지 말고 왕실에 협보할 것이며 절의를 태만히 하지 말지어다. 나도 또한 이 융공을 생각하여 참소(讒訴)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군신이 일체 되어 지성으로 기쁜 일과 슬픈 일을 같이할 것이로되 혹 어김이 있으면 신령이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 맹세를 마음에 간직하여 종시 변하지 말라."조선 초, 개국공신과 좌명공신의 회맹제는 삽협(歃血)이 대미를 장식했다. 살아있는 사슴을 잡아 그 피를 마시고 피묻은 입술을 마주보며 '서로 변치 말자'고 맹세하는 의식이다. 일종의 군대문화다. 하지만 이번 회맹제에는 '어린 임금에게는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삽혈이 생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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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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