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 16일 터스키기실험 피해자에게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클린턴 대통령(오른쪽)
연합뉴스
1997년 5월 16일,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 아주 특별한 손님들을 초청했다. 그러나 '특별한' 그들의 면면은 초라했다. 4명의 손님은 이미 휠체어에 탄 백발의 노인이었다. 가장 나이가 적은 사람이 87세였으며, (출생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100세에서 109세 사이였다. 그리고 클린턴은 이 초라한 노인들 앞에서 담화문을 읽었다.
"오늘날 미국은 잘 알지도 못하고 동의하지도 않은 채 연구에 이용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그 가족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원도 없고 대안도 없는 가난한 흑인들인 그들은 미국 공중보건국(The United States Public Health Service)에 의해서 의료적 돌봄을 제공받았을 때 희망을 발견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배반당했습니다. 당시 미국이 행한 일은 수치스러운 것이었으며 이를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른바 대통령의 공식사과였다. 클린턴의 특별한 손님들은 대통령의 사과 담화문 속에 등장하는 당사자였다. 인생의 늘그막에서 대통령의 사과를 끌어낸 사람들, 그들에게 어떠한 사연이 숨어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통령은 그들에게 백 번 사과할 만했다. 미국 정부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무려 40년간 가난한 흑인 600명을 대상으로 비윤리적인 매독 생체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오랜 기간 방치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건강 문제를 알아내기 위해 치료하고 있다고 환자들을 속이며 가짜 약을 주고 병의 경과만을 관찰하는 실험, 백악관의 백발노인들은 이 '미국판 마루타'의 생존자였다.
매독 생체실험은 미국에서 매독의 발생률이 높은 앨라배마 주 매콘카운티(Macon County)의 터스키기(Tuskegee) 지역 흑인 남성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곳의 지명을 따서 흔히 '터스키기 매독연구(Tuskegee Syphilis Study)'라고 불린다.
"매독 치료해드립니다"... 흑인들 속인 공중보건국흑인들이 노예였던 시절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에 흑인들이 동원될 수 있었을까. 사실 당시 흑인들의 처지는 노예시절과 비교해 그리 크게 나아진 게 없었다. 1920년대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거의 의사를 만날 수 없었다. 열악한 경제적·사회적 환경 때문이다. 당시 매콘카운티만 해도, 개업한 개인병원의 거의 90%가 백인의사로 주로 백인들이 사는 북부와 북동부 지역에 집중되었고, 흑인들이 주로 사는 남부와 남서부 지역에서는 병원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매독과 같은 만성질환이 흑인들 사이에 만연해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1932년 당시 앨라배마 주는 미국 전체에서 저소득층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주였고, 특히 매콘카운티는 흑인이 전체 인구의 82.4%를 차지할 정도로 대표적인 흑인 거주지역이었다. 그들 대부분(약 88%)이 농촌지역에서 플랜트농장의 차지농이나 소작농으로, 또는 생계형 소농으로 경제생활을 영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콘카운티의 백인 플랜트 사업자들은 자신의 농장에 고용된 흑인들이 매독 때문에 제명을 다 못 채우고 일찍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흑인의 건강은 생명이 아니라 돈이었으니, 얼마나 깜짝 놀랄 사실이었겠는가.
이때 "매독 환자들이 어떻게든 치료될 수 있다면 그 결과로 양질의 노동 능률을 통해 비용이상의 보답을 받을 것"이라고 공중보건국의 한 의사가 지적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의학연구가 시급했다. 그리고 공중보건국은 매독의 치료로부터 대부분 방치돼 있는 터스키기 지역을 주목했다. 희대의 임상시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공중보건국 입장에서 본 터스키기의 흑인 매독환자들은 '자연적 표본군'이었다. 치료받지 않은 상태로 인해 매독질환의 '자연적' 경로를 보다 분명하게 연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5년 이상 매독을 앓고 있는 잠복기나 후기(3기) 상태의 25세 이상 흑인 남성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해 매독의 초기 병리현상과 그 전이과정, 특히 심장이나 혈관, 신경계에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알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매독 치료가 아닌 매독 연구를 위한 실험 대상자를 모집하는 것은 역시나 힘들었다. 후에 웰즐리(Wellesley) 대학의 수잔 리버바이(Susan Reverby) 교수(의학사)가 수집한 공중보건국 개인 서신에 나타난 것처럼, "무지하고 게으르다고 조롱했던 가난한 문맹 흑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말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무료치료'를 제공한다고 속임수를 쓰게 된다. 거짓말을 한 이후부터는 상황이 아주 쉽게 돌아갔다.
자신이 '나쁜 피' 때문에 아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말기 매독을 앓고 있는 거의 400여 명의 흑인 남성 소작인들과, 대조군 역할을 하게 될 201명의 건강한 흑인 남자들이 등록했다. 환자들은 그런 연구에 참가할 수 있게 되어 운이 좋다고 여겼다.
"앞문에 정부 문장이 그려진, 간호사가 손수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을 출입하며 이웃들 앞을 지나갈 때 손 흔드는 것을 좋아하는 많은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명예였지요."이 연구를 위해 특별히 고용된 흑인 간호사 유니스 리버스(Eunice Rivers)는 이렇게 회상했다.
군대까지 동원된 치밀한 실험... 150여 명의 죽음단순히 그들이 어리석었기 때문에 속아넘어간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을 완벽히 속이기 위해 주도면밀한 작전을 짰던 정부의 행태를 곱씹어보면 말이다. 미 공중보건국은 실험대상자들에게, 편지 머리에는 "매콘카운티보건국(Macon County Health Department)"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고, 편지 말미에는 "터스키기연구소와 함께 일하는 앨라배마주보건국(Alabama State Board of Health)과 미 공중보건국"이라는 문구가 적힌 편지를 보냈다.
얼마 전 당신은 철저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우리들은 당신이 나쁜 피에 대한 많은 치료를 받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이제 두 번째 검사를 받을 마지막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 검사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검사 후에 당신이 치료를 견뎌낼 조건이 된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특별한 치료를 받게 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특별한 치료'란 신경매독(neurosyphilis)에 대한 척수천자(속이 가는 침을 몸 속에 찔러넣어 척수를 뽑아내는 일)였다. 반복적인 척수천자는 지망막염, 요통, 발열 등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하지만 실험의 성공에 눈이 먼 공중보건국 의사들에게 이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실험대상자들은 '무료 치료를 위해' 터스키기연구소병원(Tuskegee Institute Hospital)으로 데려다줄 공중위생 간호사를 만나도록 지시받았다.
이것이 특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당신의 마지막 기회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간호사를 만나는 것에 착오가 없게 하십시오.이처럼 흑인들은 이 매독 연구과정에서 철저히 '실험용 쥐' 신세였다. 그들은 연구의 의의나 내용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고 동의과정도 없었다. 만약 실험대상이 흑인이 아니라 백인들이었다면 이렇게 철저하게 모든 과정을 숨길 수 있었을까.
이는 흑인들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지 반 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차별적 의식은 남아 있었음을 방증한다. 미 공중보건국의 주요 의사결정권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1934년 공중위생국장(Surgeon General)을 지낸 토마스 파란(Thomas Parran) 박사가 사업을 앞두고 했다는 발언내용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남부에서 특히 흑인들은 본능적으로 백인을 신뢰한다. 너무 못살게 굴던가 혹은 의심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들은 의사들을 신뢰한다. 우리의 많은 남부 농촌 의사들의 친절에 감사하고 있다. 정부도 신뢰한다. 정부가 자신들의 친구이며 자신을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의사라면 당연히 신뢰를 할 것이다. 그가 공정하고 사려 깊게 임하면 협력을 얻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흑인들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였으니, 거짓말과 무시가 실험과정에서 난무했던 것이 이상할 게 없었다. 1932년 플랜트농장에서 피를 뽑는 혈청검사를 하면서 당시 플랜트농장 사업주의 승낙을 받았을 뿐, 흑인 참여자들의 동의를 받거나 그 취지를 설명하는 절차도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