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 포스터
커튼우드 픽쳐스
깊어가는 가을, 잊고 있던 가족의 사랑을 다시 일깨워주는 걸작 두 편이 최근에 개봉했습니다.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멕시코의 거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가 연출한 <비우티풀>과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국의 거장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입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부모와 자식,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모름지기, 자식은 하늘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생명은 부부의 사랑을 빌려 태어나지만, 자식은 하늘이 세상에 내리는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밖으로만 싸돌아다니는 서방을 하염없이 기다린 채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라며 장탄식을 늘어놓는 아낙의 푸념도 사실은 자식에 대한 간절함을 하늘에 빗댄 여인네의 욕망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을 잇는 '하늘의 끈'은 신자유주의의 안과 밖에서 다른 모습으로 영화 속에서 묘사됩니다. 바르셀로나의 빈민촌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악을 쓰던 아버지의 마지막 삶의 궤적을 쫓는 <비우티풀>이 그 밖이라면, 텍사스의 한 가족을 장대한 '생명의 역사'로 묘사하며 애증으로 뒤엉킨 아들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이해해가는 <트리 오브 라이프>는 그 안에 놓여있습니다.
그럼에도 두 영화는 맞닿습니다. 가족과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불편한 관계를 헤집는 사이 '하늘의 끈'을 회복시켜 놓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얼굴을 잊지 않고 또 당신을 이해하고 갈등을 완전히 해소시키며 '가족을 복원'해 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안이든 밖이든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자리는 위협받고, 실패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그런 발버둥은 자식들에게 대물림되고 있으니까요.
바르셀로나 뒷골목 걷는 그의 얼굴에서 본 내 아버지깊은 밤, 아빠의 거친 손과 딸의 작은 손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비우티풀>은 시작합니다. 아빠가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진짜 다이아몬드"냐고 속삭이는 딸의 손에 아빠는 반지를 끼워준 뒤 "이젠 네 반지"라고 소곤거리며 손을 꼭 쥐어줍니다. 오프닝과 엔딩에서 반복되는 이 장면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훼손되며, 갈가리 찢어지고, 끝내 사멸해가는 아버지들의 비루한 삶을 함축하며,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의 '국경없는 마을'을 옮겨놓은 듯한 '엘 라바'에서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밀입국자들의 취업을 알선하는 인력 브로커로 일합니다. 짝퉁가방 공장을 운영하는 중국인 사장을 대신해 경찰에게 상납하고,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가방을 팔 수 있도록 행상자리를 봐주고, 경찰의 일제단속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비록 그들의 임금에서 소개비를 챙기며 연명하지만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지극정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