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여진자비금나라 사람들이 함길도 경원에 세운 비 탁본. 현재까지 확인된 여진 문자 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비다. 이 비가 발굴됨으로서 한반도에 남아있는 여진 유적과 베일에 가려져있던 여진 문자, 인명, 지명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정근
송화강 유역 의란에서 발흥한 건주 여진은 몽골족의 세(勢)에 밀려 두만강 너머까지 남하했다. 몽골과 조선 사이에 낀 것이다. 강한 쪽이 밀면 약한 쪽으로 밀리는 게 힘의 논리다. 대륙의 강자가 갑이라면 힘이 약한 소수민족은 을이다. 갑이 밀면 밀려들어오고 느슨하면 튕겨나간다. 하여 반도는 대륙의 용수철이다.
회령에서 힘을 키운 뭉거티므르는 강 건너 풍주로 진출했으나 몽골족과의 전투에서 패배. 다시 회령으로 돌아왔다. 칼을 갈며 재기를 노리던 뭉거티무르는 북경에 낮은 자세로 접근하여 우도독의 지위를 획득했다. 약자의 생존방법이다.
평화도 잠시, 7성 야인의 반란이 일어났다. 북경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에 휘말린 건주여진은 부장 뭉거티무르와 그의 장자 권두가 전사하고 차자 동산이 포로로 잡혀가는 위기를 맞았다.
포로에서 풀린 동산이 회령에 돌아왔다. 절치부심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동산은 부중 백성 3백여 호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넜다. 혼하 강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소자하 유역까지 세력을 넓힌 동산은 건주여진의 제2 부흥기를 맞이했다. 지금으로부터 53년 전 일이다.
"대금 황제국이라 했습니까?""네, 그렇습니다."황제(皇帝).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북경과 대등한 입장에서 대륙의 장래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리. 반도에 밀려난 조선쯤은 큰 기침 한 번에 스스로 기게 만들 수 있는 자리.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수양쯤은 단박에 혼내줄 수 있는 자리. 욕심나는 자리다.
"황제라!"가슴이 뛴다. 고구려 땅 요동. 고구려의 고토 만주 벌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말 달리며 대륙을 호령하던 선조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비록 남녘 땅 두메산골 양산에서 태어났지만 마음의 고향은 항상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 있었다.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는 곳이 요동이었다. 그 벌판을 수하 장졸들과 함께 달릴 수 있는 날이 다가온다 생각하니 심장이 격하게 박동했다.
여진족의 전략은 탁월했다. 조선의 용맹스러운 장군을 옹립하여 대륙을 흔들면 북경 정권이나 한성 정권이 감히 자신들을 깔보지 못하고 후금 건국을 기정사실화 할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여진족 스스로 황위에 오르면 부자(父子)의 나라 중국과 조선의 협공을 받는 위치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이징옥을 전면에 내세우면 형제간 내홍(內訌)에 여념이 없는 중국은 여진과 조선이 연합할까봐 요하 동쪽 변방쯤은 신경 밖에 덮어둘 것이라는 계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