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자료사진)
권우성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둘러싼 의구심은 여전히 크다. 그 불신의 실체는 무엇일까?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듯이 한국사회의 변화의 흐름은 매우 가파르다. 이것을 여론조사가 제대로 포착하고 있는가, 아니 포착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불신의 실체가 아닐까?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여론조사는 '전체'로서의 대중의 삶의 모습을 조망하고 파악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로 나타나는 수치는 '개별자'로서의 인간의 세부적인 결을 포착하지 못한다. 즉 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 개개인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그 결과만을 드러낼 뿐, 지지 의사가 어느 정도 절실한지 등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데 투표참여 등 실질적인 정치적 실천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절실함이다.
젊은층 변화와 전통적 여론조사 방식의 괴리
물론 적극투표 의향 등의 질문을 통해 일정부분 보완할 수 있다. 그동안 적극투표 의향층은 50대 이상 고연령층으로 갈수록 매우 높고 젊은층으로 갈수록 급격히 하락하는 패턴이 일반적이었고 실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고연령층의 높은 투표율은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젊은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투표장에 나오고 심지어 범야권 단일 후보 경선장에도 적잖이 나타났다. 이들의 투표 참여는 기성세대와 달리 의무가 아니라 자기표현과 놀이가 결합된 새로운 차원의 실천이다. 따라서 적극투표참여 의향 같은 전통적 여론조사 기법을 통해서도 포착되기 어렵다.
여론조사가 실제 투표 결과와 어긋나는 것은 이렇듯 투표 참여에 대한 동기가 변하고 있음에도 이것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현재의 평면적인 여론을 반영할 뿐이지만, 실제 선거는 대중의 선호와 절실함, 변화에 대한 강력한 욕구 등이 교차되어 나타나는 훨씬 입체적인 방정식이다.
그리고 이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바로 범야권 단일후보 시민참여경선에 모인 1만 7891명(총 선거인단 3만명) 중 '그들만의 리그'를 깨뜨린 8276명의 백팩족과 유모차부대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 왜, 얼마나 간절히 변화를 열망하는지가 바로 민심의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론조사로 충분히 포착되지 못하는 변화의 방향은 무엇인가? 이미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듯이 변화의 중심에는 젊은층과 더불어 무당파층이 있다. 기존에 무당파층이 적극적 이유에서든 소극적 이유에서든 정치적 선택을 포기하는 쪽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이들이 정치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안철수 현상'을 일으키고 '박원순 후보'를 만들었다. 과거에는 대안 부재라는 이유로 정치적 선택을 유보하거나 포기했다면 지금은 외부에서 대안을 찾아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 즉 외부에서 대안을 발견한 무당파층의 선택에 대해 여의도 정치권은 탈정당정치 현상이라며 우려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탈정당, 탈이념이라고 이들의 분노의 에너지를 경시하고 있다.
변화의 방향, 탈이념이 아니라 가치지향적물론 이 분노의 발원지는 바로 대안이 되지 못한 기존의 보수정당, 그리고 진보정당이라는 점에서 탈정당적 요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정치 자체가 아니라 대중의 의사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는 낡은 정당체제에 대한 거부다. 진보정당이 진보적 대중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보수정당이 보수적 대중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정당체제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변화는 기존 정당체제에 대한 반발이라는 원심력을 넘어서 대중을 끌어모으는 구심력이 더 강력히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강력하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으로 표상되는 그 구심력은 다분히 가치지향적이며, 가치의 방향은 공익, (경제)정의, 공정으로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대중은 이념적으로 사고하지 않지만 대중이 지향하는 가치는 이념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현재의 변화를 탈이념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민심, 즉 여론 변화를 이끄는 것은 탈이념이 아니라 가치지향이며, 명백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대중이 원하는 가치를 어느 후보가 제대로 포착하고 실천하고자 하는가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대중이 정치를 외면한 것은 정치가 과도하게 이념적이어서가 아니라 대변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히 대변되지 못해서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선거는 가치가 충돌하는 장이며, 또 그러한 장이 되어야 한다. 어떤 서울시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진보 후보는 진보적 유권자를 충분히 대표하고, 보수 후보는 보수적 유권자를 충분히 대표할 수 있는 어젠다와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개발 문제, 부동산 문제 등 많은 이슈들로 가치 대결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 시장과 보수 시장이 구현할 수 있는 가치와 실천이 무엇인지가 극대화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대중의 변화 욕구가 충분히 대표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귀영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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