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의도 정글'에서는 단 한 번도 '안철수식 정치'를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 되면 공천헌금도 내야 하고, 필요하면 그 무엇이라도 해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야 성공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그야말로 '쏘 쿨'하게 지지율 50%를 툭 내어주는 광경은 본 적이 없어 적이 낯설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까놓고 보면, 정치권 밖에서야 '안철수 정치'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여의도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민주당의 핵심 전략관계자의 말입니다.
"전 사실 안 교수의 내공이 궁금했어요. 정치인 내공이라면 그는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그가 물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분은 아직 정치인 내공은 아니구나 판단했지요. 정치인이라면 서울시장을 덥썩 무는 게 맞습니다. 그게 정치거든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차 전 대변인의 말처럼 '정치 어린아이'여서 안 교수가 물러난 것일까요?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솔직히 가까이에서 안 교수를 직접 본 건 딱 한 번뿐입니다. 4일 밤 인터뷰에서지요. 그는 생각보다 체구가 작았고, 목소리는 조용했으며, 손가락은 희고 가늘어 마치 피아니스트 같았습니다. 마른기침을 계속 하는 것으로 보아 누적된 피곤으로 몹시 고단해 보였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박원순 문제'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그가 나온다면 '밀어드릴 수 있다'는 말로 불출마 선언을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내내 ' 51: 49'를 강조했습니다. 직접 만나보고, 박 변호사의 의향이 충분하면 그땐 포기하겠다는 말을 서너 차례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 '제3정당 창당'을 언급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는 무 자르듯 잘랐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의견과 다르니 그만 얘기하고 다니시라 연락까지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튿날, 윤 전 장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반한나라당, 비민주당'으로 자신의 정치노선도 분명히 했습니다. 이것을 '중도'라 지칭했지만, 한국정치에서 이 노선은 꽤 넓은 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MB정권에 신물이 났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대안정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라 도대체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그래서 무당파 층을 형성하는 수많은 '중도'의 깃발이 될 수 있는 것도 오늘날 우리 정치의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정가에서는 이 지점에 착목해 그가 조만간 정치세력화에 나설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순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9일로 <청춘콘서트>도 끝났기 때문에 새로운 모색을 통해 정치일선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박선숙 "안철수, 2012년 대선 도전 안 한다에 건다"
과연 그럴까요? 이 역시도 제 생각은 다릅니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진단처럼 2012년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가속도를 내 대통령선거까지 내다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꺾고 단숨에 1위로 뛰어올라 대권가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니 이 김에 끝까지 달려 세력화한 뒤에 대통령선거에 출마한다?
그가 예정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일정을 마친 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당장 제3세력을 꾸려 대통령선거 준비에 나서는 '저렴한 정치'는 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걸었던 '안철수의 길'이 아닌 것이지요.
늘 정글 같은 여의도에 있었으면서도 전혀 '여의도스럽지 않은' 평가를 하는 정치인은 박선숙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 이야기는 그래서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안박 단일화는 평소 심플하고 투명한 안 교수의 성격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평소 자신은 가진 게 많기 때문에 늘 무엇인가 사회를 위해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늘 희생과 헌신, 나누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함께 잘 사는 공생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하지요. 안 교수가 앞으로 어떤 경로와 변화를 겪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제3세력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출마 결심 임박' 보도에서 '불출마 선언'까지 안철수 교수의 기획 작품이라는 음모론적 시각에 대해서는 아주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도대체 정치를 왜 하는 것일까요? 사람이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인데, 사람을 아끼지 않고 어떻게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 두 분은 모두 우리 사회의 보기 드문 자산입니다. 이번 결정도 평소 그분들이 보여줬던 대로 '안박다웠다'고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