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이동경로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후 8년간의 피난 끝에 중경에 도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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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재직 시 두어 차례 중국 내 항일독립투쟁 전적지를 취재차 답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대상 지역이 동북3성이어서 임정의 발상지인 상해나 이동 경로인 항주-장사-광주-유주-기강 그리고 종착지인 중경을 미처 둘러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 이 지역의 항일투쟁 현지 사정에 대해서는 어두웠던 편인데 이번에 방송을 보고 저의 무지를 실감했습니다. 1910~20년대 항일투쟁의 본거지가 동북3성 지역이었다면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의 주 무대는 상해(上海)와 중경(重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현태는 국립묘지에... 독립운동가 묘소는 쓰레기장본론으로 들어가, 중경 임시정부는 일제 말기 항일 투쟁세력의 총본산지였습니다.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후 피난길에 오른 임정은 8년간의 고난 끝에 1940년 중경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곳에서 임정은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고, 대일 선전포고를 통해 연합군의 일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1944년 이후엔 장준하, 김준엽 등 학병 출신들이 일본군에서 탈출해 가세하면서 임정은 활기를 되찾기도 했으나 낯선 환경과 오랜 여정의 피로가 겹쳐 사망자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들을 매장한 곳이 바로 중경 시내의 화상산 공동묘지였습니다.
자료와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화상산 공동묘지에는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송병조(宋秉祚, 1977~1942) 선생, 차이석(車利錫, 1881~1945) 선생, 손일민(孫逸民, 1884~1940) 선생, 이달(李達, ?~1942) 선생, 김구 선생의 모친 곽낙원(郭樂園, 1859~1939) 여사와 장남 김인(金仁, 1917~1945) 선생, 김상덕(金尙德) 선생의 부인 강태정 여사 등 임시정부 요인 및 조선의용대 대원 등 30여 명의 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차이석 선생과 곽 여사, 김인 등의 유해는 국내로 봉환돼 차 선생은 효창원, 곽 여사와 김인은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습니다. 반면 다른 분들은 여태 봉환은 물론 유해발굴조차 하지 못한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