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21일 <오마이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상비약 슈퍼 판매와 관련, "논의의 본질인 국민 건강권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밥그릇 싸움과 표 계산만 남은 형국"이라며 "정치권과 약사회는 국민을 무시하지 말고, 정말로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식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휴대전화'를 가진 이를 꼽으라면 단연 김태현(46)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일 것이다. 김태현 팀장은 "하루 업무의 4/5를 전화 통화하는 데 쓴다"고 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사무실에서 첫 인사를 나눌 때도 그는 통화중이었다. 인터뷰 중간에도 전화벨이 울렸다.
김태현 팀장은 "퇴근 시간이 대중없고, 주말에도 휴식과 업무의 구분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바쁘다. 'A부터 Z까지' 알려달라는 기자의 전화부터 거센 항의를 쏟아내는 약사들까지, 그가 상대해야 사람들은 많고 다양하다. 김태현 팀장이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얘기다.
경실련은 지난 2006년부터 가정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주장해 왔다. 지난 3월부터 지역 경실련을 통해 이러한 논의를 확산 시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일 보건복지부가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허용하지 않은 점을 질책하자,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대한약사회의 격렬한 반발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문제는 현재의 논의구조가 문제 해결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일부의약품의 슈퍼 판매를 결정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약사회는 오히려 전문의약품 479개 품목을 의사처방 없이 약국에서 팔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적당한 봉합을 원하는 눈치다.
김태현 팀장은 "논의의 본질인 국민 건강권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밥그릇 싸움과 표 계산만 남은 형국"이라며 "정치권과 약사회는 국민을 무시하지 말고, 정말로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김태현 팀장과 나눈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미 1000곳의 특수장소서 약 판매... 부작용 우려 적다"- 상비약 슈퍼 판매는 오래 전부터 제기된 이슈다. "1999년 의약분업 당시에 논란이 커졌다. 당시 의료개혁위원회에서도 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건의했지만, 당시 국민의 정부는 의사와 약사 간의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이 사안을 도입하기가 부담스러워 했다. 이후 여러 차례 논란이 대두됐지만, 복지부는 약사회 눈치만 봤다."
- 약사회는 심야영업 약국 등을 통해 국민 불편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약사회는 심야약국 56곳을 운영한다 했는데, 실제로는 48곳만 운영되고 있다. 전국 약국(2만1096곳)의 0.2%다. 이마저도 서울·경기에 집중돼 있고 강원도에는 한 곳도 없다. 서울 강남역 주변에 심야약국 3곳이 몰려 있다. 정작 주거지역에는 몇 군데 안 된다. 밤에 배 아프고 열났을 때 상비약을 쉽게 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의 요구가 해결되지 못했다."
- 상비약 슈퍼판매가 이뤄지면, 동네 약국이 망해 국민 편의가 줄어든다는 주장이 있다. "이미 동네약국은 많이 사라졌다. 병원 주변에 있는 문전 약국이 대부분이다. 상비약 슈퍼 판매를 막는다고 동네 약국을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동네 약국 살리기는 조제 수가 재조정이나 다른 지원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
- 약 오남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약국의 95%가 약을 팔 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처방전을 들고 가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다. 또한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나 선박 등 전국 1000곳의 특수장소에서 의약품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도 안정성이 검증된 의약품을 슈퍼에서 팔았을 때,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김태현 팀장은 기자에게 "집에 상비약이 있느냐?"고 물었다. "두통약 등이 있다"고 하자, 그는 "두통약을 먹을 때, 의사나 약사한테 전화하느냐?"고 되물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김 팀장은 "이미 약사의 도움 없이 두통약을 먹고 있다, 이런 두통약을 굳이 약국에 가서 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상비약은 이미 안전성이 검증됐고, 자가치료하는 약들이다. 상비약을 언제든 집 근처 슈퍼에서 팔게 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포장 단위와 함량을 줄이고 필요한 정보들을 충분히 제공하면 된다. 이러한 제도적 고민이 필요한 문제지, '오남용 우려가 있으니 절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이미 국민 건강권은 뒷전, 밥그릇 싸움과 표 계산만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