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4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2009년 2월 김성호 원장이 1년을 못 채우고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S라인'(서울시장 시절 측근) 인맥인 원세훈으로 바뀌면서 두 번째 인사가 단행되었다. 원 원장은 3월 초 국정원의 실·국장 및 시·도 지부장 등 부서장급 고위직의 80%를 교체하는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불과 6개월 만에 이뤄진 인사에서 유임은 4명에 불과했고 1급 고위직 간부의 30% 가량이 대기발령을 받았다.
두 번째 인사 또한 사실상 '형님'의 최측근인 김주성 기조실장이 기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청와대 파견 근무 중에 '형님'에 반기를 든 정두언 의원뿐 아니라 김성호 원장까지 사찰했던 '영포 라인'(영일-포항 인맥)인 이창화 행정관이 김 원장 퇴직후 국정원에 복귀해 원 원장 체제에서 4급으로 승진해 인사과장을 맡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에 퇴직한 한 호남 출신 간부 A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영포 라인'이 주동이 되어 지난 정부 시절 요직에 있던 간부를 쳐냈는데, 특히 호남 출신 간부들을 두 번에 걸쳐 '지능적'으로 쫓아냈다. 처음 우리가 퇴직하고 나서 2급 후배들을 요직에 앉히길래 그래도 호남 출신 일부는 살려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이 1급으로 승진한 뒤에 6개월 만에 이뤄진 두 번째 인사에서 대기발령을 받았다. 나가라는 것이었다." 호남 출신 간부에 승진 후 대기발령...'지능적으로' 쫓아내국가정보원직원법에 따르면, 2~3급 간부는 보직을 받지 못해도 계급정년(2급 5년, 3급 7년) 기한까지 신분이 보장된다. 그런데 1급의 경우, 6개월간 보직을 받지 못하면 자동 면직된다. 결국 지난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지냈거나 호남 출신의 간부들을 '지능적으로' 쫓아내기 위해 승진을 시켜주고 자동 면직시켰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A씨는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군과 국정원 같은 조직은 정권이 바뀌어도 조직의 근간은 보수인데 이명박 정부 집권세력은 처음부터 국정원이 10년간 잘못해서 나라가 북한에 넘어갈 뻔했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했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들은 과거 정부 10년 동안 요직에 있던 직원들은 '부역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조직을 운영했다. 지난 정부 10년간 국정원의 모든 부서가 '좌파로부터 오염되었다'는 기본 시각을 가졌기에 요직자를 모두 개혁 대상자로 봤다. 그래서 관련 제보나 투서가 들어오면 끝없이 쳐내다보니 인사가 잦아졌다.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10년간 세상은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었는데, 이들은 냉전적 아날로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문제는 5년 혹은 10년마다 되풀이된 이런 인위적인 축출 인사로 인해 부서장의 인사 순환 패턴이 5년은 앞당겨진 점이다. 세대 교체라는 명분은 있지만 그로 인한 전통의 단절과 전문성의 결여가 문제였다.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도 지난 2월 23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홍준표 최고위원께서 국정원을 쇄신해야 한다고 했지만, 저는 쇄신은커녕 지금 정상화를 해야 될 지경에 와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렇게 비판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국정원이 과거청산을 한다고 해서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지고 그러면서 대북기능이 약화되고 무력화 된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다. 이 정부 와서 그런 국정원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을 제대로 못했다. 오히려 전 정부 인사도 다 교체한다고 하면서 너무 인사가 무원칙하게 자의적으로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져서 국정원 자체가 지금 기능이 상실되고 마비상태에 와있다고 오래 전에 들었다."국정원의 기능 마비가 '현재 진행형'이 아니고 '무원칙하게 자의적으로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진 인사'로 이미 '오래 전부터'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사가 너무 잦고 예측할 수가 없어 원내에서는 '국가정보원은 조직개편원'이라는 자조가 유행했다. 서울시 공무원 출신임에 빗댄 '원주사' 혹은 '원따로'로 불리는 원 원장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시도 때도 없이 인사를 해 하위직까지 조직을 흔들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적격심사' 등 정보기관 생리 무시한 성과주의 도입국정원직원법 및 시행령을 개정해 정보기관의 생리를 무시한 성과주의를 도입한 것도 원세훈-김주성 체제의 폐해로 꼽힌다. 국정원은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2009년에 '전문관' 제도와 함께 적격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원장이 원내에 적격심사위원회를 두고 모든 직원들이 근무성적평정 결과, 2회 연속 또는 10년 이내 3회 이상 최하위 등급을 받은 때에는 적격심사를 받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적격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원장이 직권에 의하여 면직시킬 수 있도록 직권면직 조항도 개정했다.
국정원은 최근에는 현재 년 1회인 정기 근무성적평정을 년 2회로 늘려 근무평가와 적격심사를 더 강화하는 국정원직원법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해외파트에서 1급 부서장을 지낸 국정원 간부 B씨는 '무원칙 잦은 인사'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평가도 좋지만 국정원 요원들의 전문화나 전문관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려면 최소한 한 분야에서 2~3년의 교육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무원칙한 인사로 국내파트 요원들을 마구잡이로 뽑아서 해외로 내보내는 한 '리비아 추방 사건' 같은 사고는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원세훈-김주성 체제에서 '무개념 인사'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2009년 가을 대대적 조직 개편과 함께 기능을 재배치한 것이다. 세번째 인사였다.
조직 개편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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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 개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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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정보 수집-분석, 과학정보
| 1차장
| 해외정보 수집-분석, 북한정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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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보 수집-분석,수사, 외사방첩, 대테러
| 2차장
| 국내정보 수집-분석 수사, 대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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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보 분석, 대북전략, 대북공작
| 3차장
| 과학정보, 외사방첩, 대북공작(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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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전통적으로 해외담당 1차장(해외정보 수집-분석, 과학정보), 국내담당 2차장(국내정보 수집-분석, 수사, 외사방첩, 대테러보안), 북한담당 3차장(북한정보 분석, 대북전략, 대북공작)의 업무 분장을 고수해왔다. 그런데 원 원장은 친정체제를 구축하면서 1차장 산하의 '과학정보' 업무와 2차장 산하의 '외사방첩'을 3차장 산하로 이관하는 식으로 기능을 재배치하는 통에 업무분장 질서를 완전히 흩트려 놓았다.
'3차'에 붙일 게 마땅치 않아 '1차', '2차'에서 떼어다 붙인 것이 화근이번에 문제가 된 산업보안단을 포함한 외사방첩 분야를 3차장 산하로 배치한 것은 우리나라가 갈수록 국제 산업스파이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정보 분석과 대북전략 및 공작 업무를 전담하던 3차장실이 남북대화의 단절로 '개점 휴업'인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3차장 산하의 북한국(북한정보 분석)을 1차장 소관으로 이관하면서 대북전략국(남북대화 및 전략 수립)을 폐지함에 따라 대북공작국(대북심리전단 등)만 남게 되어 기형적인 불균형을 인위적으로 개선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진단했다.
"그런 식으로 대북전략국을 없애고 기능 배치를 하다보니 '3차'(3차장실)에 붙일 게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1차(1차장실)에서 '과학기술'을 가져오고, 2차(2차장실)에서 '외사방첩'을 가져와 그 밑에 '산업보안단'을 떼어다 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