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통보를 받은 홍익대학교 청소·경비용역 노동자들이 1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처우 개선과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지난 1월 4일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3일째 되었을 때다. 취재를 나가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 여학생과 대화를 하는데,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던 남학생이 끼어들었다. '서른 살의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당시 여학생은 노동자들을 해고한 대학을 비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학원생은 달랐다.
"민주노총 종북세력이 들어와서 학교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청소원들이 저러는 것은 다 그들의 공작 때문이다."
이어 그는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에 비판적이었던 총학생회도 옹호했다.
"'면학분위기를 위해 농성을 자제해 달라'는 총학생회의 요구는 정당하다. 이전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무시하고 운동권 행사를 학교에서 개최해 학습권을 침해당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지금 비운동권 총학생회를 뽑았고 그것이 존중돼야 한다."청소노동자들은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 학교 정문을 오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선전전을 하는 중이었다. 그 대학원생은 뭔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청소노동자들을 바라보며 앞에 서 있던 여학생에게 "솔직히 짜증나지 않냐, 그쪽도 비운동권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운동권 아니면 비운동권'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듯했다.
그 말을 듣던 여학생이 짜증이 났는지 "나는 운동권 쪽에 가깝다"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기자도 인사하고 돌아섰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학부생들보다 학교를 더 오래 다녔고 나이도 많은 대학원생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단지 "외부세력의 공작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니. 청소노동자들이 승리해도 그 이후가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부터다.
홍대 사태가 주목받은 진짜 이유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농성 49일 만에 일터로 돌아갔다. 지난 20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경지부 홍익대학교지회(이하 노조)는 용역업체와 조합원 전원 고용승계, 주 5일·하루 8시간 근무제 보장, 임금인상 등에 잠정합의했다. 생활임금(시급 5180원) 보장, 직접고용, 고소고발 취하 등 일부 요구사안은 얻어내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였던 고용승계와 임금인상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이 49일을 밖에서 보내는 동안 수십 년 만의 한파가 몰아쳤고, 구제역 사태가 터졌으며, 이집트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굵직한 뉴스들이 계속 쏟아졌지만 '홍대 사태'에 분노한 여론은 결코 묻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