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05년 2월28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이 발언권을 요구하는 모습.
남소연
주주자본주의에선 주주를 위해 기업이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한다고 장 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주주자본주의라고 주장하는(<시사IN> 2011.1.8) 요즘 한국에서 오직 일반주주들 압력 때문에 노동자를 대량 해고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박정희나 전두환 때 더 함부로 노동자 목을 쳤다.
한국은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자본주의다. 회사재산이 총수(지배주주)의 호주머니 장난감 비슷하게 취급되며, 일반주주나 종업원은 총수의 이익에 기여하는 한에서만 고려대상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총수비리를 보라.
장 교수는 참여연대 공격에서 재벌들과 보조를 맞췄다. 아마도 참여연대가 외국자본과 한통속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작용한 듯싶다(<쾌도난마 한국경제> 82~94면). 그러나 이는 장 교수가 삼성 문제를 헛짚었듯이 참여연대 활동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결과다.
총수비리를 따지는 소액주주권을 행사하고자 참여연대가 지분을 모은다든가 할 때 외국자본이 참가한 경우는 있다. 이게 비난거리일까. 또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게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게 바로 참여연대에서 분가한 경제개혁연대다.
물론 장 교수 말마따나 정체가 불분명한 외국투자자가 우리 기간산업을 함부로 주무르는 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외국자본을 마녀사냥할 필요도 없다. 외국자본은 우리가 주체적 선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더욱이 민족주의 감정을 악용해 부패하거나 무능한 '재벌총수' 문제를 덮어선 안 된다. 그것은 '재벌기업' 나아가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또 총수 문제를 덮으면 오히려 재벌의 부도확률을 높여 외국자본에 기간산업을 잘못 넘겨줄 가능성도 커진다.
한국사회 특유의 개혁 과제마저 무시해선 곤란셋째로, 장 교수는 한국사회가 진보의 과제만이 아니라 개혁의 과제도 안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무시한다.
한국의 이념과 정책을 평가할 땐 '진보와 보수'라는 기준과는 별개로 '개혁과 수구'라는 구분이 필요하다. 전자를 가로축에 놓는다면 후자는 세로축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시장과 국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진보파와 보수파의 구별은 시장과 국가의 크기(量)에 관련된다. 진보파는 국가의 영역을 확대하려 하고, 보수파는 반대로 시장을 확대하려 한다.
한편, 개혁파는 시장과 국가의 질(質)을 높이려는 세력이고 수구파는 이에 저항하는 세력이다. 시장의 질 제고란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경쟁을 발전시키는 것이고, 국가의 질 제고란 국가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장 교수는 복지확대를 주장하는 점에서 진보파다. 그러나 재벌개혁운동을 왜곡 비난해온 점에선 수구파에 가깝다. 수구·진보파인 셈이다. 그는 국가와 재벌이 짝짜꿍이 되었던 박정희시대가 정치적 독재 빼고는 너무나 좋은 시대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중상주의적 박정희 시대의 국가역할을 인정하더라도 바람직한 선진국을 지향하는 오늘날엔 진보뿐만 아니라 개혁의 중요성도 간과해선 안 된다.
장 교수는 재벌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재벌이 정계, 관계, 언론계, 학계, 법조계를 오염시키고 그리하여 기업 사이에 불공정경쟁이 지속되는 현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선진국이라고 이런 문제가 전혀 없진 않지만, 장 교수도 지지하는 북유럽을 보라. 어디 한국만큼 국가가 부패하고 시장이 불공정한 경우가 있는가. 장 교수와 필자가 바라는 복지사회를 위해서도 진보만이 아니라 개혁이 필요하다.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가 국민적 설득력을 가지려면 국가가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이어선 안 된다. 그리고 대기업정규직과 비정규직(및 중소기업근로자) 사이의 부당한 격차라는 노동시장의 불공정경쟁 문제는 복지확대를 통한 실질임금 격차해소가 현실적 처방이다. 진보와 개혁의 이러한 상호보완관계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지면사정상 이쯤에서 글을 정리해 보자. 장 교수의 주장엔 옳은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념에 사로잡혀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이번 책에서처럼 중대한 오류가 있으면 다른 좋은 주장마저 신뢰성을 잃는다.
그리고 시장과 주주를 우상숭배해선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우습게 보거나 죄인취급해서도 곤란하다. 시장만능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다루는 단순한 환원론으로부턴 올바른 해법이 나올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개혁과 진보가 동시에 필요한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덧붙이는 글 | 김기원님은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