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빙과의 인터뷰를 두고 보도할 것인지 놓고 망설이는 로스에게 보도국장은 작은 양심에 흔들리지 말라고 한다.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이상과 명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말리는 토드에게 "문제는 대테러전쟁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거기에 무관심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며 최후통첩을 합니다. 면담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온 토드에게 TV 뉴스는 인기 연예인의 섹스 라이프와 함께 로스가 취재한 어빙의 '새 전략'을 긴급 속보라며 자막으로 보도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 어니와 아리안은 산산이 부서진 꿈과 희망을 끌어안은 채 아프간의 오지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영화는 어빙과 설전을 벌이며 상념에 잠긴 로스의 회한이 무엇이었는지, 택시를 타고 가며 흘린 눈물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명분 없는 전쟁에 반대한다면서도 수천 명의 미군이 죽어가는 '화염' 옆에서 빈둥거리지 말고 참전하라는 말리 교수의 위선에 대해서도 입을 다뭅니다.
마치 루퍼트 머독의 전신으로 불리는 미디어 재벌 월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오슨 웰스가 연출한 걸작 <시민 케인>(1941년작)에서 케인이 정론직필을 주창하며 신문을 창간했다 어떻게 권력의 화신으로 변모하는지를 절묘하게 포착해 내면서도 끝내 '로즈 버드'에 대해 침묵하듯이 말입니다. 대신 영화는 TV 뉴스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토드의 얼굴에 카메라를 고정한 채 엔딩 크레딧을 올립니다.
종편 선정된 조중동 '편들어 당 만들까?'영화에서 로스는 자신이 쓴 기사를 되짚어보며 정론과 곡필 사이에서 '잠시' 갈등합니다. 수렁에 빠진 이라크전과 아프간에 대해 회한의 눈길을 보내며, 뻔히 보이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어 보도국장에 맞서고 눈물도 흘리니까요. 하지만 부시 재선의 일등공신이었던 루퍼트 머독의 <폭스뉴스>처럼 과거에도 그랬듯이 로스는 어빙과 여전히 '공모'하고 있었음을 영화는 토드의 눈을 통해 직접적으로 고발합니다.
권력과 언론의 공모를 실증한 대표적 인물은 앞서 말한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루퍼트 머독입니다. 탈세 등으로 재판까지 받고 재임기간 중 경제성장률이 1% 수준이었음에도 3선 총리가 된 베를루스코니. 자신이 사주로 있는 <뉴욕포스트>가 힐러리의 출마를 극구 반대했음에도 정작 자신은 앞장서서 그녀의 정치자금을 모았지만 결국에는 부시를 당선 시킨 일등공신으로 등재한 루퍼트 머독. 이들의 신기에 가까운 비즈니스는 조중동의 흠모를 한 몸에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미디어를 통해 민심을 조작한 아이템은 '진보에 대한 분노'와 '성공신화'입니다. 영화에서 어빙이 진보세력들에게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끊임 없이 상기시켜 줘야 한다고 말한 그 대목입니다. 머독이 <폭스뉴스>를 정점으로 진보에 대한 분노를 공포의 정치로 탈바꿈시켜 미국의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고, 일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베를루스코니가 누구든지 자기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이탈리아 사회를 보수화시킨 뒤, 보수권력을 창출해낸 지배전략은 조중동의 미래전략에 다름 아닙니다.
한국사회에서 곡필의 대명사로 불리는 조선일보의 사시는 공정함을 뜻하는 '불편부당'입니다. '편들지 않고 당 만들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종편 선정으로 날개를 단 현실은 조선일보로 하여금 '편들어 당 만들겠다'는 동업자 의식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한 술 더 떠 언론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의 가벼움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선언할지도 모릅니다.
조중동은 종편으로 여론을 독점해 갈 것입니다. 끊임없이 정치 혐오증을 부추기고, 정치의 비생산성을 부각시키며, 진보 힘 빼기에 방점을 찍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성 등 재벌과의 동업으로 영화 속 어빙과 로스의 관계를 역전 시켜 새로운 유형의 권력을 창출하려 할 것입니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잘못된 뉴리더'들은 그렇게 탄생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하여, 대안의 정치와 대안의 언론을 갖추지 못할 경우 민주공화국은 거세되고 껍데기만 남을 개연성은 커지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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